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팬과 결혼한 김근석

프로야구의 12월은 선수들이 본격적인 짝을 짓는 계절이다. 해를 넘기면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나 결혼식에 모일 친구나 동료가 줄어드니 휴식기인 12월에 식을 올려야하는 것이다.

프로포즈하고 일주일만인 12월29일 극적으로 결혼식을 끝낸 총알탄 사나이가 있었다. 코가 유난히 커 별명이 '피노키오'라고 불렸던 삼성의 초창기 3루수 김근석은 그래서인지 유별나게 소녀팬이 많았다. 입단 첫 시즌부터 붙박이 3루수였던 김한근을 제치고 일약 주전으로 도약했는데 실책이 별로 없는 안정된 수비에 빠르고 정확한 송구가 일품이었다.

특히 라인을 타고 흐르는 안타성 타구를 역모션으로 잡아 단숨에 1루수 미트로 찔러넣는 빼어난 송구로 타자를 아웃시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1983년 입단 선수 중 김시진과 장효조 다음으로 팀 공헌도가 높았고 전국적으로 팬도 많아 삼성에서 꽃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였다.

1984년 6월19일 삼성 선수들은 잠실구장에서 전기우승을 확정짓고 들뜬 기분으로 버스를 탄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버스 곁으로 다가와 주먹으로 버스를 두드리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창문을 열자 소녀는 노트와 펜을 올려주었고 김근석은 시원하게 사인을 해주며 물었다.

"몇학년이니?" "중학교 3학년이요." "그래, 공부 열심히 해." 손을 흔들어 주고 막 창문을 닫으려 할 때 소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오빠, 편지해도 돼나요?"

그렇게 해서 소녀가 쓴 편지는 일주일에 한번 정기적인 고지서처럼 김근석의 집으로 날아 들었다. 그리고 잠실 경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3루와 마주 보이는 좌석에 앉아 응원해 주었다. 경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버스로 다가와 과일 꾸러미를 건네주며 힘내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소녀를 바라보며 김근석은 또 다른 느낌의 힘을 얻곤 했다.

그러나 1985년 시즌 초 뜻하지 않았던 허리 부상이 찾아와 김근석은 2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동안 삼성의 3루는 신예 김용국이 차지해버렸다. 결국 백업으로 보낸 1986 시즌이 끝난 후 청보의 투수 김기태와 트레이드가 되면서 김근석은 삼성을 떠났다. 이 무렵 고3이 된 소녀는 입시 준비에 바빴지만 틈틈이 인천으로 경기를 보러왔다.

1988년 6월 경기 중 2루 베이스를 커버하다 주자와 충돌, 김근석은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4개월을 병원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온 그녀는 어느새 늘씬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매일 찾아와 간호해 주는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한결같은 정성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대학생이고 8살이나 차이가 나 결혼 상대로는 망설여졌다. 그 와중에 그녀가 자신을 위해 백일기도을 다녔던 사실을 알게 된 김근석은 퇴원 후 함께 월미도로 놀러간 어느날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결혼할래?"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도 그만두고?" 그녀는 오랫동안 그 물음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후 김근석은 가장 나이 어린 팬과 결혼한 프로야구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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