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꽃을 사람처럼 보고, 사람을 꽃처럼 보면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있을까. 김윤현(52) 시인이 시집 '들꽃을 엿듣다'(시와 에세이 펴냄)를 냈다.
그는 1984년 도종환, 배창환, 김종인, 김용락 시인 등과 함께 만든 '분단시대'를 통해 꾸준히 시 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는 시인이다. '까칠하다'는 민족작가회의 대구지회장으로 있으면서 연하디 연한 꽃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다소 놀랍다.
그러나 그는 "IMF 시대를 겪으면서 힘든 삶을 꽃에 투영시켰다."고 했다. 야생화를 통해 시와 삶을 이야기한다.
'가뭄에도 몸을 낮추어 견디고/목이 타는 햇볕에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이제 삶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외진 곳이나 바로 서기 불편한 곳에서도/말없이 아름답게 피는 개망초를 보며/인생을 더 긍정하기로 했다/보아라, 비탈진 산하에서도/고개 끄덕이며 사는 것들은 다 아름답지 않은가/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며/낮은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편편한 들판이 아니라 해도/가지런한 논둑이 아니라 해도/다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개망초' 전문)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우겠습니다'('채송화'), '외로울 때는 얼음처럼 엉키지도 말고/.../뿌리가 얼 추위가 눈앞에 닥친대도/겨울이 주는 슬픔을 받아들여야지'('인동초'), '홀몸으로 맵찬 바람을 이겨냈을 때/어떻게 지냈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말랑이장구채')
세찬 인고를 겪으면서도 삶을 긍정하려는 시인의 들꽃 같은 마음들이 시편마다 빼곡하다. 붓꽃, 과꽃, 벌노랑이, 수국, 솔체꽃, 노란망병초, 멱쇄채 등 이름도 정겨운 우리 꽃에서 사람의 향기를 끌어내고, 그 속에서 아래로 아래로 향하려는 겸손과 망아(忘我)의 미덕을 펼쳐내고 있다.
그는 "풀꽃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꽃이 한 말 속에는 때로는 웃음이 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이 고여 있기도 한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꽃과 시, 삶이 한 묶음이 된 꽃다발을 들고 교실 창밖을 따뜻하게 엿보고, 엿듣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경북 의성 출생, 경북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김 시인은 시집으로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질까',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다'가 있으며 현재 영진고 교사로 재직 중이다. 110쪽. 8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