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소멸하지 않는다/박상철 외 14인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도도한 폭포도 한 방울의 물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약한 물방울이 모여 격랑이 되고, 그 물은 둑을 터뜨리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세상도 늘 한 사람에 의해 변화의 단서를 찾았다. 현실의 모순을 고통스럽게 고민하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할 방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고 한 이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혁명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가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실패와 좌절로 이어졌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열망이 때로는 후대에 전해져 새로운 열망과 시도로 부활되기도 했다.
이 책은 기원전 1세기 노예반란을 주도했던 스파르타쿠스부터 1970년 칠레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옌데까지, 세계의 혁명가 15인의 삶과 투쟁을 15인의 전문가들의 눈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스탈린처럼 잘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이네사 아르만드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도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73년에 78명의 검투사 노예들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의 카푸아에서 반란을 일으켜 로마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인물이다. 한때 12만 명에 달했던 봉기군은 그러나 마지막 결전에서 대부분 전사하고 포로 6천여 명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스파르타쿠스는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혼자서 포위당한 채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질서의 파괴자로 그려졌지만, 근대에 이르러 억압과 차별을 떨쳐버리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위대한 인물로 재평가되었다.
프랑스 혁명전 처음이자 마지막 혁명을 주도한 에디엔 마르셀의 삶과 투쟁도 조망한다. 그러나 책은 부르주아 상인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지닌 국왕에 맞선 그에게 혁명가라는 이름을 세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반추한다.
혁명가들의 삶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랐다. 흔히 동세대 인물인 마르틴 루터와 비교되는 '천년왕국주의자' 토마스 뮌처도 마찬가지다. 일부 역사가들이 그를 농민과 빈민들의 광범위한 무장봉기를 주도했던 탁월한 혁명가라고 찬사하지만, 당대에는 모든 것이 공유되는, 이뤄질 수 없는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해 헛되이 애쓴 과대망상증 환자로 치부했다.
부르주아 혁명에 맞선 최초의 공산주의자 그라쿠스 바뵈프, 과학적 사회주의와 결별하고 유토피아를 택한 이단아 윌리엄 모리스, 19세기 후반 독일 '사민당의 아버지'이자 '노동자와 민중의 황제'로 격동의 시대를 건넜던 베벨,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인 유태인 여성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과 인생도 살폈다.
러시아는 혁명가의 산실이다. 척박한 땅에서 싹튼 혁명의 기운은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혹적인 인물,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사상 전쟁을 치른 인물들이 대거 나왔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 서거 90주년이 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고독한 수호자 게오르기 폴레하노프, 레닌의 대척점에 서는 바람에 오랫동안 역사의 쓰레기통 안에서 외면당했던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 '레닌의 연인'이란 그늘에 가린 아네사 아르만드, 혁명가이자 다섯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진짜 삶을 추적한다. 그녀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의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했고, 시동생과 결혼함으로써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청산한 두 남자의 아내였다.
이외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인 안토니오 그람시, 에스퍄냐 아나키즘 혁명가를 대변하는 두루티, 블랙 무슬림에서 국제주의 혁명가로 이름 높던 말콤 엑스, 선거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초유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좌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칠레 아옌데 전 대통령의 짧은 혁명기도 살펴본다.
이들의 이상과 꿈은 1990년대 들어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한물 간' 사상으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시장 자본주의가 '가장 합리적인' 체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전히 모순과 문제점은 잔존하고 있으며, 이들 혁명가의 노력과 시도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 시대를 허문 도도한 그들의 꿈도 여전히 소멸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460쪽. 1만 7천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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