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댐이 무너진다"

그 날, 창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첫눈'이라는 들뜬 마음도 잠시, 어둡고 추운 기나 긴 겨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TV는 연신 IMF(국제통화기금) 총재 '캉드쉬'라는 생소한 이름을 토해놓고 있었다. 1997년 12월 3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와 캉드쉬 IMF 총재는 구제금융 합의서에 공식 서명했다. 이때부터 'IMF'와 '캉드쉬'는 한국의 어린아이들조차 가장 무서워하는 이름이 되었다.

내일 모레면 그 12월 3일이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리더십 없는 국가, 그 속에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다시 한번 일깨우기 위해 급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재조명해본다.

97년 여름 태국의 바트화와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웃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까지 번져 주가는 폭락했다. 11월 일본 고위관리가 다음 차례는 한국이 될 것이라며 美(미) 연방준비위원회에 "댐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고 긴급타전했다.

이는 충격적이었다. 한국은 당시 세계11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러시아 경제의 두 배였다. 한국은 지극히 성공적으로 발전해서 더 이상 개도국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세계은행은 세계 1등급 국가 목록에 한국을 공식적으로 포함시켰다. 모든 지표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한국경제의 성장은 분명 빠르고 견고했다. 한국은행의 외화보유고는 250억 달러였으며 이 정도면 '아시아 경기 침체의 전염병'을 충분히 비켜갈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이 외환보유고를 속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정부는 외환 대부분을 시중은행에 매각 또는 융자했으며 은행들은 악성 채무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자금을 썼다. 국제경제학자인 찰리 시그먼이 추수감사절 연휴 주말에 한국은행에 전화를 걸어 "외환을 조금 더 방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고 묻자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던 자금은 이미 다른 곳에 사용된 후였다.

이 상황을 수습하는 데 수주일이 걸렸다. IMF는 550억 달러의 금융지원 종합정책을 마련했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금융구제책이었다. (앨런 그린스펀 최근 저서 '격동의 시대' 중에서)

윤주태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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