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다

짧지 않은 인생의 골목길을 걸어가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의 위기를 맞을 때가 있다. 장난기 심한 아이가 고추잠자리의 한쪽 날개를 떼어내고 손아귀에서 풀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이는 장난삼아 행한 일이었겠지만 그 고추잠자리는 생의 최대 고비를 맞게 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위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은 짓궂은 아이의 소행처럼 대비할 틈도 없이 들이닥칠 때가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후배를 만났다. 결혼한 지 몇 년 만에 남편을 잃고 어린 딸 둘과 막막하게 세상에 던져져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그녀를 보며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그 얼굴을 대할 때면 흐르다 멈춘 눈물이 읽혀지곤 했었는데 몇해를 보내고 마주앉은 그녀는 비로소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군가의 누이처럼 편안하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한쪽 날개를 찢긴 고통보다 배고픈 자식들에게 먹여야 할 한 끼 밥이 더 절실했기 때문에 아득했던 절망의 협곡을 건널 수 있었다고 했다. 세 식구의 생존을 위해 연약한 화초가 강인한 선인장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들으며 문득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비화가 떠올랐다.

위대한 작가로 후세에 남겨진 그에게도 무명시절 한때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파리의 룩상브르그 공원에서 헌병의 눈을 피해가며 살찐 비둘기를 몰래 잡아 하루의 양식으로 해결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살기 위해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갔기에 대문호가 될 수 있었다.

흰 머릿결이 성성해진 후배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절치부심한 세월을 끌고 왔을 지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젠 아담한 집도 마련하고 자신과 친구가 될 만큼 자란 딸들과 조금은 행복하다며 만개한 국화꽃처럼 벙그레 웃었다.

손톱 밑에 작은 가시가 하나 박혀도 신경이 온통 그곳으로 쏠리며 온몸이 고통스러운 법이다. 하물며 가족을 잃은 아픔은 더 말해 무엇하랴.

쓰나미처럼 몰아닥친 위기는 한 일생을 뒤흔들어버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곤 하지만 불에 달군 쇳덩어리가 더욱 강해지듯이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삼아 그 고행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면 갑절의 발전과 성취감이 견딘 자의 몫이 되어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학창시절 아꼈던 후배가 알에서 깨어나는 고통을 견디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거머쥔 것처럼 그녀의 아문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미전(시인·대구한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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