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결은 '미소 한 줌'…예천임씨 종가 김장 스케치

"이거 배추 속은 다 어디로 갔어?"

"조 서방이 다 먹었나봐."

"우리, 우리꺼 말고 형님이 담근 저 예쁜 김치 갖고가자."

예천 임씨 금양파문중 금포고택 형제들은 매년 함께 모여 김장을 한다. 부산·창원·이천 등 전국 곳곳에서 모인 3남2녀 다섯 가족에다 어머니까지 합하면 23명이나 되는 대식구다. 김장하는 날이면 모든 집안 식구들이 고향집으로 모이는 통에 조용하던 고택은 소란스러워진다.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의 금포고택은 315년 전 지은 집으로, 전형적인 입 구(口)자형 한옥이다. 사랑방이 유난히 높이 위치해, 당시 집 주인의 위세를 말해준다. 고택은 생활에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하곤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이 종가는 어머니 박차생(81) 씨와 아들 임영하(52) 씨 등이 원형 가까이 보존하며 지키고 있다.

이날 김장에 사용한 배추는 150여 포기. 이 모든 배추는 집 앞 텃밭에서 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잡아가며 무공해로 기른 배추다. 고추는 햇볕에 내다 말린 태양초 고추이며 천일염을 사용한다. 맛있기로 소문난 이 종가 김치의 숨은 비결은 물.

금소리 물은 바로 받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할 뿐 아니라 예로부터 물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강경새우와 추자도 멸치젓 등 질좋은 재료를 버무려 맛은 저절로 따라온다. 다시마와 멸치를 우려서 사용한다. 이날 사용된 재료의 양도 대단하다. 고추 40근, 무 30개, 각종 젓갈류는 총 20kg도 넘는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김장 담그기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바로 예천김씨 금양파문중 금포고택 종부(宗婦) 박금화(53) 씨. 박 씨는 "김장에 좋은 재료 외엔 특별한 비결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김장하는 솜씨가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김장 준비부터 담그는 손놀림, 그리고 맛도 최고다.

박 씨의 솜씨는 김장 뿐 만이 아니다. 종가를 지키고 노년을 준비하는 '준비된 종부다.' 이를 위해 문화재 공부는 물론 안동포 만드는 법, 민화 그리는 법 등을 배우고 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시아버님이 3년 전 돌아가시면서 집안에 쌓인 고문서들을 정리해야 했어요. 안동문화원에서 3년간 문화재를 공부하고서야 겨우 고문서에 눈뜰 수 있었죠."

그가 안동포에 직접 그린 민화는 하회마을 등 전통상품 판매소에서 판매되고 있다. 민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과 닿아있다. "안동포는 여름밖에 사용하지 못하잖아요. 이를 공예품으로 만들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데다 사계절 사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예요."

그 힘들다는 종부 역할이 박 씨에겐 오히려 자랑이다. 인터뷰 내내 가문 자랑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우리 가문은 효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요즘도 한 달에 한번 빠지지 않고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효와 우애를 중시한 교육 덕분에 형제들 간에도 얼굴 한번 찌푸린 적이 없죠." 조상인 금포 임정한(1825~1884)의 한시 매력에도 푹 빠져, 금포 추모 기념회도 추진 중이다.

그는 올해부터 고택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김치, 된장, 메주 쑤기, 된장·고추장 담그기, 국화차 만들기, 제사 체험 등 종류도 여러 가지다. 금포고택 김치맛이 입소문이 나, 김장김치를 주문하는 곳도 늘고 있다.

"요즘은 종가를 지키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 안타까워요. 하지만 여기서 고향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저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고택을 지키면서 제 노후를 풍요롭게 살기 위한 준비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