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들 사이에 학력 격차가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서 드러난 실상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대학입시에서 고교 내신을 중시하는 제도를 교육부가 아무리 도입한다고 해도 고교 간 격차가 이 정도라면 대학들에게 내신 반영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기는 힘들다.
대구만 놓고 봐도 이번 자료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고교별로 서울대 합격자가 몇 명이라는 식으로 불충분하게 비교되던 학력 격차가 실제로는 훨씬 더 큰 수준으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또한 더 이상 쉬쉬할 문제가 아니라 교육 당국이 솔직하게 자료를 공개하고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2007 수능 결과에 드러난 격차
분석된 고교는 56곳으로 특목고(대구과학고, 대구외국어고, 대구체육고, 경북예술고), 특수지고(다사고, 포산고, 현풍고, 달서고)는 제외했다.
표는 고교별로 해당 영역에 지원한 수험생 숫자와 1~3등급 누적 숫자 및 등급별로 전체 수험생 가운데 누적 점유율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가장 위에 표기된 등급별 비율은 전국 수험생 가운데 해당 등급을 받은 수험생 비율을 나타낸다. 언어영역의 경우 1등급은 원래 4%이지만 동점자가 많이 발생하는 바람에 5.1%로 늘어났고 11%인 2등급은 12.1%까지, 23%인 3등급은 동점자가 너무 많아 거꾸로 21.9%에서 갈렸다는 뜻이다.
이를 중심으로 학교별 등급 점유율을 보면 그 학교가 전국 평균치보다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영역별로 학교 내의 성적대별 학생 분포도 추정할 수 있다. 가령 1등급 점유율은 평균치보다 높지만 2, 3등급 점유율이 낮은 학교는 그만큼 중상위권이 취약함을 보여준다. 반대로 1등급 비율은 낮지만 3등급 비율은 평균치를 넘는 학교들도 적잖은데, 이는 두터운 중상위권을 최상위로 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함을 나타낸다고 풀이할 수 있다.
고교 간 학력 격차는 1등급 숫자와 점유율 비교로 쉽게 알 수 있지만 2등급과 3등급 점유율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수리 가 영역의 경우 1등급 점유율이 평균치인 4.0%를 넘는 고교는 16곳인데 비해 10개교는 1등급이 한 명도 없다. 또 1등급 점유율 상위 10개교는 3등급 점유율이 평균 39.12%로 평균치의 두 배에 가까운 반면, 하위 10개교는 3등급 점유율이 12.33%로 평균치의 절반을 겨우 넘었다. 상위 10개교에서는 전체 응시생의 40% 안에만 들어도 3등급을 받지만 하위 10개교에서는 15% 이내에 들어도 4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고착되는 격차
2007학년도 수능시험 결과에 나타난 고교 간 격차는 교육 당국이 오래전부터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방치, 손쓸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서울대 합격자 숫자만 봐도 소수 학교에 편중되고 있으며 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2005학년도의 경우 대구의 서울대 합격자는 55개 고교에서 250명이 나왔는데 수성구의 12개 고교가 52%인 131명을 차지했다. 이는 250명 가운데 114명을 차지했던 2004학년도보다 더욱 늘어난 것이다.
5년 전인 2002학년도 수능시험 결과와 비교해 보면 학력 격차의 변화 양상과 고착 정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전 영역 총점으로 등급을 매겼는데 대구 전체의 1등급 수험생 숫자는 인문계 1천26명, 자연계 584명이었다. 이 가운데 상위 5개교의 1등급 숫자는 각각 279명(27%)과 165명(28%)이었다.
2007 수능에서는 대구 1등급 수험생 가운데 상위 5개교의 점유율이 언어 25.6%, 수리 가 45.98%, 수리 나 27.08%, 외국어 31.07%였다. 전체적으로 고교 간 격차가 심해진 가운데 수리 가와 외국어에서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올해 고3 수험생들이 지난 4월 치른 학력평가 결과와 비교하면 더욱 세밀한 판단도 가능해진다. 가령 2007 수능에서 전 영역 상위 10위 안에 든 고교는 7곳이었는데 이 가운데 4개교는 올해 4월 학력평가에서도 전 영역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시험을 치른 학생이 바뀌었는데도 비슷한 성적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들 학교의 평균적인 학력이 높음을 입증한다. 반면 하위권 고교들 가운데 몇몇 곳은 해가 바뀌어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공개해야 하나
2007학년도 수능시험과 지난 4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결과를 본지가 입수한 지는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 그동안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2008학년도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와 교사들에게 혹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능시험 이후에도 공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심사숙고를 계속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행된 수능 9등급제가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입시전문가들에게조차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면서 고교별로 등급제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문제를 제기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대학들의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극히 낮은 상황에서 고교 간 학력 격차는 내신의 유·불리로 결코 해소할 수 없는 엄청난 불평등을 만들기 때문이다.
고교 서열화로 인한 과열 경쟁을 부추기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는 묵은 비판을 받아들이기에는 학교 간 격차가 너무 심각할 뿐만 아니라 해가 갈수록 고착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고교 간 학력 격차는 단순히 고교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앞선 초·중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대구 교육 전체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특히 오는 18일부터 일반계 고교 지원서를 내는 대구의 중3생들에게는 이 같은 정보가 시급한 문제다. 2지망까지 우선 지원할 학교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각 학교의 학력은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2010학년도부터 고교선택제를 시행하는 서울의 경우처럼 대구에서도 고교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학력을 비롯한 학교 세부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서울고법이 2002~2005학년도 수능 원데이터와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를 공개하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곱씹을 만하다. 재판부는 "자료가 공개될 경우 우리나라의 현행 교육 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가능하고, 생산적인 정책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며, 관련 정책을 입안하거나 기존 교육정책을 개선하는 등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열화로 인한 과열 경쟁과 사교육 조장 및 교육과정 정상 운영 저해 등이 우려된다는 교육부의 주장에 대해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그보다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참여 및 교육정책의 투명성 확보 등 이익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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