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학전 영어 사교육 확산

선행학습≠학업 성취도

▲ 취학 전 5~7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 영어학원의 조기영어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영어 조기 교육에 뛰어들기 전에 그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사진은 대구 한 유치부 영어학원 수업 모습.
▲ 취학 전 5~7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 영어학원의 조기영어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영어 조기 교육에 뛰어들기 전에 그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조언했다. 사진은 대구 한 유치부 영어학원 수업 모습.

유재영(35·여) 씨는 요즘 여섯 살짜리 아들을 보낼 만한 유치원을 찾느라 발품을 팔고 있다. 유 씨가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영어 때문. 영어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유치원이나 아예 유치부를 운영하는 영어 학원으로 옮기고 싶다는 것이다. 유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초교 1학년부터 조기 영어 교육이 확대·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마냥 동요나 부르고 있자니 솔직히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유치원에 그대로 보내야 할지, 아니면 비용 부담이 되더라도 영어 학원 유치부를 알아봐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지난 1일부터 대구 공·사립 유치원 원아 모집이 시작된 가운데 유 씨처럼 영어를 화두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교육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영어 교육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유치원, 어학원, 학교 교사들로부터 실태와 도움말을 들어봤다.

▲유치원, 영어 교육이 대세

대구의 A유치원은 올해부터 부설 유치부 영어 학원을 개원·운영하고 있다. 주로 A유치원 원아 중 더 깊게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5~7세 아동들이 다니고 있는 이곳은 1일 4시간가량 영어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미국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교재 등 교구재를 새로 구입하고 원어민 강사도 채용했다. 5세는 노래와 율동, 6세부터는 단어 붙여 읽기, 7세는 읽고 쓰기 위주로 영어를 배운다. 현재 유치원에서는 영어는 물론 한글 쓰기 교육도 할 수 없지만 학부모들의 열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치원 관계자는 "어머니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영어는 하루에 얼마나 가르치느냐, 원어민 강사는 있느냐다."며 "최근 부쩍 강조되고 있는 말하기뿐만 아니라 읽기와 쓰기를 어느 정도로 가르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온다."고 말했다.

유치원 운영자들은 어린이집에서도 영어교육을 하는 마당에 영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원아 모집 자체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영어교육 시설·프로그램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가 타 유치원과 차별화하는 전략이 됐다. 아예 '영어마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어교육을 홍보하는 유치원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 B유치원장은 "특히 지난해부터 초교 1학년 영어 조기 교육 실시 계획이 발표된 이후 영어 프로그램을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며 "요즘엔 원생들 간에 영어 격차도 크게 벌어져 학부모들이 초교 입학 전부터 영어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C유치원장은 이런 영어 열기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유치원 수업을 마치면 영어 학원 차량이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원생들을 태워가는데 솔직히 씁쓸합니다." 하루 20~30분 유치원 영어수업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부모에게 등 떠밀리는 아이들을 보면 벌써부터 학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요즘엔 원장의 교육 철학도 뒷전"이라며 "유치원에서는 기본 생활습관과 인성, 사회성을 배워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한 기능교육이 전부인 것 같다."고 했다.

▲유치부 영어학원도 각축

IMF직후인 1999년, 2000년 무렵 전성기를 맞았던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는 '유치부 영어학원'의 잘못된 명칭이다.)들은 최근 유치원에 밀려 원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갈수록 팽창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구에는 수성구 지산·범물, 달서구 상인동 등을 중심으로 12~14개의 대형 유치부 영어학원이 운영 중이며 지난해부터 서울 브랜드의 어린이 영어학원 4개가 새로 뛰어들었다.

한 유치부 영어학원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학원생을 모집 중인데 지금까지 정원(90명)의 70% 정도를 채웠을 뿐"이라며 "학생 모집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경기 탓. 보통 40만~60만 원에 이르는 학원비를 부담스러워하는 가정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유치원에서도 영어교육이 대세가 되면서 기존 유치부 영어학원은 갈수록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유치부 영어학원은 여전히 기존 유치원과는 차별되는 비교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초교 1학년 조기영어 도입이 알려진 후 학부모들의 커진 불안감이 유치부 영어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영어학원 측은 "소수 인원(5~10명)으로 반을 꾸리고 원어민과 영어 활용이 가능한 한국인 교사 등 전문 강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유치원보다 교육의 수준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며 "하루 4시간 말하기, 듣기에 집중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5, 6개월 정도면 원어민 강사의 말을 알아듣는 수준도 가능하다는 것.

7세 딸을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오늘 원어민 선생님이 화를 내시면서 뭐라고 꾸중을 하셨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꾸지람의 이유가 궁금하기에 앞서 그 말을 알아들은 딸애가 대견하다."며 "초등학교에 입학해 영어 하나라도 남보다 앞서나가게 하고 싶은 게 부모 욕심"이라고 했다.

▲학교가 생각하는 취학 전 영어교육

현재 교육부는 2009학년도부터 적용되는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초교 1, 2학년 영어교육 확대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난해부터 영어 조기교육 시범학교를 선정·운영 중이지만 어디까지나 '이르면 2009학년도'일 뿐 영어교육 확대 실시 시기와 관련해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 이상문 용계초교 교사는 "개정 교육과정에서 1, 2학년으로 영어 교육 시기를 앞당길지, 현재 영어교육이 시작되는 3학년부터 영어 시수를 확대할지를 놓고 교육부에서 논의 중인 상태"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교육부에서도 현재 5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 읽기를 4학년부터 가르치도록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해 놓은 만큼 공교육에서도 영어 조기교육은 점차 확대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취학 전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선행학습에 따른 장점도 있지만 실제 학업 성취도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한 교사는 "학원, 유치원에서 영어를 미리 배운 아이들 상당수가 학교 수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따분해하는 면이 있다."며 "외국어에 대한 흥미유발이나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단지 이것을 위해 시간과 돈을 그만큼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유치원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 리듬에 맞춰 영어를 무작정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초교 입학 후 얼마나 연계 학습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영어나 한글을 얼마나 가르칠 것인가 보다 제대로 된 공부 습관을 길러주거나 독서를 통해 우리말 독해능력을 키우는 것이 취학 후에 더 큰 효과를 본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