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12일에 발표하려던 것이 닷새 앞당겨졌다. 올해 처음 시행한 9등급제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 50여만 명의 수험생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교육부장관은 수험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일찌감치 확인한 뒤 학교에서 교사들로부터 여유 있게 진학지도를 받도록 하겠다고 생색을 냈다. 교육부는 지난달 중순 시·도 교육청별로 3천만 원 안팎씩 내려보내 급하게 입시설명회와 진학지도 교사 연수 등을 벌이도록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듣기에 우선은 감언(甘言)이다. 지난달 15일 수능시험을 치른 후 모호한 영역별 등급 구분 점수와 불확실한 자신의 등급 때문에 괴로웠던 걸 생각하면 절이라도 할 일이다. 더구나 학교 진학지도가 충실해진다니.
그런데 한 발만 비켜서서 보면 기가 막힌다. 수험생도, 학부모도, 진학지도 교사도 모두 마찬가지다. 수험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성적을 며칠 일찍 알았다는 반가움만 있을 뿐, 남은 입시 일정이 더 고될 것이라는 암담함이 밀려온다. 대학들이 아직 수시모집 일정도 끝내지 않은 마당에 성적만 덩그러니 받아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결국 상담만 되풀이해야 할 노릇이다. 몇 번이고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고, 학원들을 돌아다니고, 몇만 원씩 들여 인터넷 입시 업체에 접속하고, 한 번에 수십만 원이 들어도 전문 상담 업체를 찾아야 하고.
교사들도 답답하긴 다를 바 없다. 7일에 성적표를 받은 뒤 정시 원서 접수를 마감하는 26일까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담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할지 모른다. 인제 와서 진학지도 연수니 입시설명회니 여는 건 현장을 외면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3년 넘게 2008학년도 대입 제도를 준비했다면서 교육부는 도대체 지금까지 무얼 하다가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것인가. 이래놓고 수험생을 위해서라고 의기양양한 건 무슨 배짱인가.
병을 만든 장본인이라 원인을 찾아 치료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면 병의 증세에 맞춰 당장의 고통이라도 없애주는 대증(對症) 요법이라도 내놔야 하는데,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되레 이중삼중 고통을 더하고 있으니.
교육부의 다음 수순은 뻔해 보인다. 대학들이 수시모집 일정을 더 앞당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혼란을 키웠다고 덮어씌우거나, 그나마 성적 발표일이라도 앞당겨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하거나.
그러는 사이 수험생들은 미노스의 미궁 앞에 선 테세우스를 떠올릴지 모른다. 미궁 속의 괴물에게 인간 공물을 바쳐야 하는 조국의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약속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아니면 청춘을 되찾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눈먼 점쟁이, 사기꾼이 득세하는 입시판에서 소원을 이루게 해 주는 악마를 만나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김재경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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