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더 나은 12월을 위하여

12월의 초입이다. 어느새 쌀쌀한 기운이 옷 속으로 파고들고, 마음이 바빠지는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여느 해 12월보다 올해는 참 시끄럽고, 어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에다 삼성 비자금 사건과 같은 각종 의혹들로 국민들의 머릿속이 복잡하고, 착잡하다.

5년 만에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만큼 고민을 해야겠지만, 미래를 전망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면 목석 같은 사람들도 한 해를 보내는 감회에 젖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새해를 소망한다. 그런데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반갑지 않은 소식들 때문에 사람들은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 선거가 끝나면 차분하게 12월을 보낼 수 있을까?

공약대결이 없으니 주인인 국민들은 선거판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예전에는 헛공약이라도 선거 때면 '무엇을 고치겠다. 무엇을 잘하겠다'라고 열심히 알리고, 상대방의 공약을 공격이라도 하였는데, 올해는 그런 말조차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사람들은 정치권에 실망하여 아예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대선주자들이 남은 기간만이라도 생산적인 논의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도 주인의 자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러 가지 사건들로 정신이 혼란스럽지만, 한 해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지나온 일들을 돌아봤으면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과, 결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려야 할 것이다.

올해에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이 재심을 통하여 무죄를 선고받고, 민사소송을 통하여 손해배상을 받았다. 유신시대에 억울하게 사형당한 희생자들이 32년 만에 명예를 회복하였다.

오랜 세월 사회의 냉대를 받으면서 힘겹게 버티어 온 노년의 미망인들과 가족들이 소망을 이루게 되어서 다행이다. 다만, 지역 출신 희생자들이 많았음에도 지역민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 그다지 힘을 보태지 못한 것은 한 번쯤 고민해 볼 일이다.

그런데 올해에도 희생자들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처벌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다면서 장기 단식으로 저항하였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의 터전이다. 그런 만큼 국가보안법이 그 터전을 훼손하거나 제한하는 법률이 아닌지 고민을 계속 안고 갔으면 한다.

어느 때보다도 지난 몇 년은 양극화의 그늘이 점점 더 짙게 우리 사회에 내려왔던 시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재수, 삼수생들이 늘었다. 이들 20대는 비정규직 평균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88만 원 세대'라는 말은 대학을 졸업한 20대들의 비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격도 점점 벌어졌고, 비정규직보호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며 절규하고, 아까운 목숨까지 내놓고 있다.

지역에서는 포항건설노조 사태가 장기화되다가 노동자들이 대량 구속되었고, 일부는 장기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법 위반에 관한 사실관계나 법률적용의 논란을 떠나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된 사회에는 희망이 없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시위현장에서 폭력행사와 시위현장의 상황을 침소봉대하여 왜곡하는 낡은 문화는 버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당선될 대통령은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힘썼으면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내놓아도 언행을 삼가지 않고, 신뢰를 잃으면 백약이 무효이다. 마지막으로 5년 뒤 12월에는 좀 더 신명나게 선거를 하고, 서로 지난 한 해, 지난 5년 동안의 수고로움을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남호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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