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학생들의 취업 '바늘구멍 뚫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막상 취업을 하더라도 '사오정(사십오세 정년)'이니 '오륙도(오십육세 도둑)'니 해서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학 졸업 뒤 취업한 이들이 다시 대학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더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새 삶을 꿈꾸는 영남대 조세현 씨와 계명대 임치근 씨가 눈길을 모은다.
♠ 대한항공 사직후 대학 강사 새출발 임치근씨
"끊임없이 미래를 구상하고, 대비한다면 길은 열려 있다고 봅니다."
15년 전 대한항공에 입사한 임치근(43) 씨는 지금 대학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임 씨는 13년 동안 대한항공 대구공항지점에서 탑승, 발권, 수속 등 업무를 전담하는 지상직으로 근무했다. 임 씨는 당시 '고객 만족'을 최우선 모토로 삼았고, 항상 활달하고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4년 명예퇴직할 때까지 마지막 5년 동안 팀장 역할을 맡아 항공사 지상직 전 분야에 대한 업무를 섭렵했다. 명예퇴직 1년 전 KTX 개통 등 항공수요 감소에 따른 위기를 앞두고 대학에서 관광경영학 공부를 시작했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자신의 미래를 미리 준비한 것.
2003년부터 계명대 대학원 관광경영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시작, 2년을 마친 뒤 곧바로 학위를 받았다. 대학 측은 그의 풍부한 경험과 열정을 인정해 박사과정에 들어간 그에게 같은 학과에서 재학생들에게 '항공사 경영론' '여행사 경영론' '관광자원론' '인터넷광고정보론' 등 과목에 대한 강의를 맡겼다. 임 씨는 박사과정 중 전공공부는 물론 계명대를 비롯한 2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2005년, 대학 강의 첫해 2학기를 마친 뒤에는 시간강사 40명 가운데 학생들이 평가한 '최우수 강사'로 뽑히기도 했다. 이 평가에는 강사의 성실성, 수업 준비도, 이해능력, 교수방법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임 씨는 "강의나 박사과정 공부가 결코 힘들지 않았다."며 "13년 동안 즐겁게 또 최선을 다해 일해 온 실무분야에 대해 후배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이론적으로 더 깊이 있는 공부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게 행복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석사과정 시작 5년 만인 올해 '항공사 시장지향성이 종업원의 친사회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관광경영학 박사학위를 거머쥐었다. 이 논문은 항공사 근무자의 직무 만족도가 높을수록 대민 서비스는 물론 사회적 공헌도가 높다는 연계성을 설문조사 등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실무와 이론을 통해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항공사 업무를 포함한 관광경영 분야에서 우수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보람이자 꿈"이라고 말했다. 특히 "나에게서 배운 후배들이 항공사에 입사했을 때 직원들로부터 '당신은 누구한테 배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떳떳하게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전파하고 싶다."고 했다.
♠ 대기업 인사과장 그만두고 약대 입학 조세현씨
조세현(39·영남대 약대 4년) 씨는 지난 2004년 남들이 인정하는 대기업 인사과장직을 그만두고 새 인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삼성물산 패션부문 인사팀으로 입사한 그는 99년 회사가 제일모직 패션부문과 통합된 뒤 인사과장으로 4년 동안 일했다. 인력, 조직관리 등 인사분야에만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것.
조 씨는 "대기업 인사팀에서 남부럽지않게 근무했지만, 주변에 40대 후반부터 직장을 그만두는 이들을 보면서 50대, 60대 이후의 내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됐다."며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회사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 인생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기간 '자격증'을 따겠다는 생각으로 한의사나 약사가 되기 위해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2002년 4월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가량 기존 문과가 아닌 이과 공부에 힘을 쏟았으나 첫해 고배를 마시고, 이듬해 영남대 약대에 당당히 입학한 것. 그러나 이때부터 조 씨에겐 새로운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대학 취업담당자로부터 대기업 인사팀 경력을 활용해 '취업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처음 한두 차례의 특강에 학생들의 호응이 너무 컸던 것. 이때부터 300명씩을 상대로 한 대규모 특강이 이어졌고, 이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개별 취업상담도 거의 매일 계속했다. 조 씨는 최근까지 취업특강만 100여 차례, 개별 취업상담 1만 5천여 명으로, '취업특강, 취업상담 전문가'란 별칭이 붙게 됐다.
급기야 올해 초 대학 학생역량개발실이 조 씨에게 취업과 관련한 그동안의 특강과 상담 내용을 책으로 묶어보자는 제안을 해왔고, 최근 '면접 끌려가기 vs 끌고 가기' '성공취업을 위한 첫걸음-자기소개서'란 취업가이드북 2권을 펴냈다.
'면접 끌려가기 vs 끌고가기'는 기업체 면접과정에서 주로 나오는 질문과 예상문제 등 50가지에 대해 대학 내 20개 취업스터디 학생들이 답변한 것을 모두 모은 뒤 각각의 질문에 대한 '우수' '아쉬움' '미흡'의 답변을 싣고 있다. 조 씨는 책에서 "면접과 자기소개서는 '남과 차별하기'가 가장 중요하다."며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차별화를 통해 면접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질문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약사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조 씨는 "매력적인 약사의 일과 인사팀 경험을 반영한 '취업특강'을 병행하는 게 앞으로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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