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외환위기 후 10년을 돌아보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올해 11월로 10년이 되었다. 1992년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 대한 정책대응을 제대로 못해 외환위기를 초래했고, IMF 관리체제를 졸업하기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그나마 IMF 관리체제하의 다른 나라들보다 일찍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온 국민이 위기 극복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은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외환위기가 가져 온 가장 큰 변화를 겪은 분야는 바로 위기의 진원지인 금융분야였다. 실제 지난 10년간 퇴출 및 M&A를 통해 부실금융기관 916개사가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비난여론과 지방금융사들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대형화를 통해 생존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금융개방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성과를 얻었다.

금융만큼이나 기업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성장만을 추구하던 기업들이 내실경영을 통한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보다 건실한 기업들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이 안정성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내부유보 증가에 따른 투자 부진, 노동투입의 감소, 매출 증가세 약화 등을 불러왔고 이러한 양적성장 부진이 국가경제 성장세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IMF가 가져온 또 하나의 변화는 양극화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IMF외환위기를 나름대로 훌륭하게 극복해 내었지만 그 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부유층과 극빈층으로 대변되는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성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양극화 해결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소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가경제 전체가 겪은 이러한 변화에 못지 않게 지역경제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였다. 무엇보다 대동은행과 여러 종금사들이 퇴출되면서 제조업은 물론 지역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 금융산업이 지역 전 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는 혈액과 같은 존재임을 감안해 볼 때 지역산업 전체가 얼마나 힘든 극복의 과정을 겪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금융사뿐만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는 중견 기업들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등을 겪게 되면서 지역 경제의 급격한 침체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아직도 대구는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했고 지역 경제는 한동안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국내 경쟁이 아닌 글로벌 경쟁이 보편화되어 국내 경제상황뿐만 아니라 국제 환경변화에도 민감하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는 점이다.

대구도 이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각 경제주체 간의 명확한 목표의식과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지방정부는 적극적인 기업지원정책을 실시하고 대표 중견기업들을 세계적 기업으로 육성하여 지역 경제를 견인할 주체를 키워야 한다. 또한 신성장동력의 적극 발굴과 고용유발효과가 큰 서비스 부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유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제2관문 공항 조기건설과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인프라 구축,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통한 도시브랜드 향상에도 혼신을 다해야 한다.

지역 기업들도 경쟁의 단위가 국내가 아닌 세계의 각 지역 간, 기업 간의 경쟁시대가 도래했음을 받아들이고 기술제휴나 해외진출, 산학연 클러스터 등을 통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마침 얼마 전 성서산업단지가 혁신 클러스터로 지정된 만큼 이를 활용한 적극적인 산학연 협력체계 마련도 절실하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면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약간의 경제적 성취로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때,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한국경제 대토론회에서 마조리 시어링 미 상무부 차관보가 한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태풍으로 무너진 집을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짓는 일은 무의미하다. 언젠가 또 다른 붕괴를 당하고 말 것이다. 더 큰 태풍이 몰아치더라도 끄떡없는 집을 새로 지을 수 있는 공법을 개발하는 것이 옳은 해법이다." 지난 10년을 통해 얻은 교훈들을 철저히 가슴에 새겨, 더 큰 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강한 국가와 튼튼한 지역경제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인중 대구상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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