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부패한 유능

한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곧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도들은 전 재산을 갖다 바치고 종말을 기다렸으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교주는 하늘이 신도들의 믿음을 시험한 것이라며 멸망의 날은 다시 온다고 사기를 쳤다. 역시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고, 교주는 신도들의 믿음이 지구를 구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신도들은 교주를 고소하기는커녕 더 광신적으로 그 종교에 빠져들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얘기다.

이 현상을 관찰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 이론을 만들어냈다. 양립 불가능한 인지요소들이 존재할 때 사람들은 이를 해소하려고 한다. 이때 대부분은 자신의 결정에 배치되는 증거나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며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신념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신도들의 비합리적 태도는 그 전형적 사례이다. 교주의 거짓말을 믿고 모든 것을 바친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더욱 광신도가 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심리적 방어기제의 하나로 제시한 '선택적 망각' 역시 같은 기능을 한다. 사람들은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뇌공학은 이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이수영 교수에 따르면 뇌에는 감각기관에서 두뇌로 신호가 전달되는 순방향의 경로와 두뇌로부터 감각기관으로 전달되는 역방향의 경로가 있는데 이 역방향의 경로가 순방향 경로의 감각신호 전달을 선택적으로 막아버리고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이다. 시저는 2천 년 전에 이를 갈파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유권자들 사이에서 "깨끗한 무능보다 부패한 유능이 낫다"는 심리가 퍼져가고 있다. 덕분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이 후보가 BBK사건과 관련이 있어도 계속 지지하겠다는 지지자는 60%를 넘는다.

보고 싶은 것(경제대통령 이미지)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도덕적 하자)은 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도덕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데서 인지부조화 현상도 발견된다. 검찰이 BBK사건과 이 후보가 무관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니 이제는 인지부조화도 아니지만.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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