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감포로 가는 길목에서

불국사에서 오른쪽 아스팔트 숲 속 길을 지나 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동해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따금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둥 떠 있고, 주위의 소나무들이 쌀쌀한 겨울 날씨 때문인지 몸을 낮추고 바람을 피하는 듯하다.

산 정상 부근으로는 우리나라 예술의 극치를 자랑하는 석굴암이 있고, 옛날에 개울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며 연못을 남겼다는 기림사, 문무대왕이 죽어 해룡으로 변해 바다 굴을 통해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지 등이 멀찌감치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는 감은사는 문무대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인데 앞에 있던 연못은 흔적도 없고 덧없이 지나간 세월의 자취만 남아 있다. 나는 토함산 뒷길을 천천히 내려와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는 대왕암으로 향했다.

감포읍 봉길리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바위섬 하나가 바다에 떠 있는데 그 바위섬이 바로 대왕암, 즉 문무대왕의 수중릉이다. 문무대왕의 높은 뜻을 밝히려는 수중무덤의 발상, 또한 그 유언을 지키려는 신문왕의 충효의 정신이 파도처럼 일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대왕암이다. 이런 신라 왕들의 호국정신은 출렁거리는 파도처럼 영원하리라.

문무대왕의 수중릉에서 감포 쪽으로 나가는 길목에는 이견대가 있다. 이 정자는 당시 문무대왕의 염원을 되새기려는 아름다운 장소였으며 지금도 여기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절경과 설화적인 전설을 떠올리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왕조가 몇 번을 바뀌어도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이야기 즉, 신으로부터 얻은 대나무로 젓대를 만들어 불면 적병도 물러가고, 질병과 가뭄·장마·바람·파도가 사라졌다고 전하는 설화는 신문왕의 태평성대에 대한 염원이 형상화 되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아련히 남아 있다. 그곳이 바로 '이견대'이다.

이견대에 앉아 만파식적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동안 파도가 출렁이고 구름 아래로 갈매기는 고운 바다 위에 파도를 일으키며 날고 있었다. 하얀 갈매기와 파도가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설화는 앞으로도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수평선을 넘나들던 돛배처럼 하얗게 파도를 가르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세월의 무상함과 바다의 영원함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바다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다. 시원의 숲이다. 멀리 고깃배에서 내비치는 불빛에 겨울의 낭만은 더해가고 있었다.

장식환(대구시조시인협회장·영진전문대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