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선충 휩쓰는 경남 '명산 松씨'들의 한숨

"몹쓸병 몰려온다는데 예방주사 한대 못맞으니…"

'소나무 에이즈(AIDS)'로 불리는 재선충병이 최근 경남지역 일대를 휩쓸면서,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 산청·합천·거창의 소나무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수천 년을 꿋꿋이 버티며 국립공원 지리산과 가야산, 덕유산을 지켜온 '명산 송(松)씨'가 곧 닥칠지도 모를 재앙으로 인해 멸문지경에 놓인 것.

비교적 청정지역으로 분류돼 안심하고 있던 산청군도 지난달 단성군 남사리 일대 소나무 85그루(감염목 9그루, 감염의심목 76그루)를 소각했다. 이곳은 재선충이 발생된 인근 하동군 옥종면과 불과 5㎞ 떨어진 인접지역으로 잘못되면 국립공원 지리산 전역 확산은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국립공원관리사무소와 경상남도, 시군들은 예산타령만 하며 '강 건너 불구경'이다.

"결국 그곳까지 그놈의 몹쓸병에 감염됐다는데 우짜면 좋노!"

"도내에서 지금까지 무려 21만여 그루가 잘려나갔는데도, 예방주사 한번 놓아주지 않더니 이꼴을 당하지 않았나…."

"이제야 경남환경연구원, 산청군이 몰려와 자르고 태우고 야단법석이라네. 이런 꼴을 벌써 당할 줄 알았제. 우리도 이미 글렀네."

지리산 문중에서는 이미 체념한 듯 힘없는 목소리로 가야·덕유문중을 염려했다.

"이제 남은 문중은 두 곳뿐이니 자네들도 돈 좀 달라고 해서 미리 예방주사라도 맞게나. 자네들까지 죽으면 국립공원은 존재가치가 없어져."

"국립공원가야산관리소(소장 손동호)는 실제 돈이 없고, 경남도는 예방주사(아마멕틴원액)를 위한 예산으로 무려 13억 1천여만 원을 쓰는데, 이는 감염지역에만 해당될 뿐 우리는 병에 걸려야 예산을 편성하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

"예방주사는커녕 소나무 이동 감시초소 한 곳 세우지 않는데 우리가 병에 안 걸리고 버티겠나."

다 죽고난 뒤 예산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

"여보게! 우리가 다 죽기 전에 예방을 위한 뾰족한 방법은 없겠는가? 죽어도 하소연은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지난달 30일 해인사에서 재선충 문제로 가야산관리협의회가 열려 '뒷북 행정'을 질타했다며?"

"그날 아무런 대책 없는 당국이 뭇매를 맞았지."

"그래도 부산대학교 생명자원과학대학 김동필 교수가 희망을 가질 방안을 내놓았다며?"

이날 김 교수는 "중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황산을 재선충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반경 10㎞ 일대 소나무를 벌채해 과감하고 신속한 대처를 했다. 우리도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한반도 전역이 감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경남도가 벌이고 있는 '푸른숲가꾸기 사업' 등의 예산을 재선충병 차단사업 예산으로 전환시켜, 반경 최소 3㎞ 이상을 벌채하고 백신주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량 소나무숲 현황을 신속히 파악해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하며, 시·군 경계지역마다 감시초소를 신속히 설치해 이동경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소식에 영남 명산의 세 송씨 문중은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표정이 되면서도 "행정이 뒷짐진 몸을 풀고 과연 팔을 걷어붙일까?"라며 불안을 감추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면서 우리의 쉼터와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대재앙 앞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뒷북치는 산림행정을 벗어나 하루빨리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합천·거창 정광효기자 khje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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