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은 74.4세, 여성은 81.8세로 나타났다. 남녀 평균은 78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만 54세로 나타났다. 넉넉잡아 평균 30세에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간다고 볼 때, 만 24년을 벌어서 퇴직 후 남은 여생 24년을 보내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껴서 쓰면 혼자 또는 부부는 먹고 살 수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딴 판이다. 집 한 채 마련하려면 어디선가 눈 먼 돈으로 대박이 나던가 물려받은 유산이라도 넉넉해야 할 판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황혼은 꿈으로 그칠 수 밖에 없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팔팔하게 젊은 후배들 못잖게 일할 수 있는데, 50세가 넘어서 아직 직장에 붙어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온갖 눈치코치에 가시방석에 앉은 듯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엉덩이가 쑤셔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퇴직 연령이 낮아지면서 30대가 되면 벌써 노후를 준비해야 할 형편이다.
정치권에서 정년 연장이 논의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정년을 늦춘다고 하지만 실제 근로자들이 느끼는 체감 정년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아울러 노후 자금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갈수록 커지고, 본업보다 재테크를 잘하는 사람이 능력있다고 인정받는 분위기가 됐다.
백화점 한 중간 간부는 "50세까지 일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일찌감치 돈을 많이 모아야겠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최소한 집을 빼고도 몇 억은 손에 쥐어야 할텐데, 그 생각만 하면 회사 일은 딴전이고 돈 모을 궁리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10억 만들기' 열풍이 닥친 지 오래됐다. 골프치면서 가끔 해외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려면 이 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
과연 그럴까? 최근 LG경제연구원이 노후자금을 새롭게 산정해서 발표했다. '연령별 기대수명'과 '고령 가구주 가구의 연평균 생활비' 등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현재 연령이 30세, 40세, 50세인 동갑내기 부부가 은퇴 후 서울에 살면서 평균적인 노후생활을 할 경우 60세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노후생활비 총액은 각각 5억 3천여만 원, 4억여 원, 3억 1천여만 원으로 추정된다.
만약 군 지역에 산다면 금액은 2억 4천여만 원, 1억 8천여만 원, 1억 4천여만 원으로 낮아진다. LG경제연구원측은 "노후자금 목표치가 갈수록 높아진 것은 골프, 해외여행, 중형차, 파출부 등으로 상징되는 고품격 생활패턴을 전제로 한 금융회사의 마케팅 전략 때문"이라며 "특히 이들은 물가상승률은 높게 잡고 노후 대비 투자의 기대수익률은 낮게 잡아 노후 대비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일 국민들의 노후 부담에 대한 인식에서도 한국이 가장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2001년 일본 정부가 실시한 '고령자의 생활과 의식에 관한 국제비교 조사'에 따르면 한국 고령자의 70.6%가 '스트레스나 고민이 있다'고 응답해 일본(60.4%)나 미국(48%)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노후준비에 대한 질문에도 부족하다는 답이 67.4%로 일본(49.1%)나 미국(29.7%)보다 훨씬 높았다.
공인회계사 김재록(47) 씨는 "지나치게 이른 노후 준비 부담이 오히려 직장내 역동성을 떨어뜨려서 결국 사회적 조로를 낳게 한다."며 "노후를 걱정하는 30대에게 회사 생활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본업만 열심히 해도 노후가 보장된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보니 요즘 직장인들 대부분이 직장과 재테크라는 두 가지 일을 하는 셈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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