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으면 무조건 좋아(?)
조기 퇴직이 보편화하면서 30대 팀장, 40대 임원들이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경영자들은 낮아진(젊어진) 중간 간부들의 연령층이 회사에 역동성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부장급 이상 간부 한 명의 임금이면 젊은 신입 사원을 최소한 2~3명 쓸 수 있다.
단순히 숫자만 놓고 본다면 '닳고 닳은' 한 명보다 젊고 패기 넘치는 2~3명이 낫다. 하지만 수직계열적인 인력 구조를 바꾸지 않고, 젊은이만 선호한다면 '조로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 승진을 위한 경쟁 연령대만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 40대 중반까지도 현장에서 발로 뛰며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줬던 선배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30대 후반만 되면 벌써 승진을 위한 '사내정치'에 골몰하게 된다. 어느 덧 조직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젊은 패기는 사라지고, 자신을 키워줄 수 있는 상사를 좇아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성서공단내 한 기업체 대표는 "고참 직원 중 상당수를 명예퇴직 형식으로 내보내고 난 뒤 많이 후회했다."며 "일부 젊은 사원들은 간부로 승진시켰는데 한동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듯 보였지만 결국 노련함이 떨어지고, 고참들이 하던 구태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말했다.
◇ 오래 버티기가 최대 관건
대기업 차장이던 정모(38) 씨는 몇 해 전 대구본부로 발령받았다. 대구 출신인 그는 본사로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롭다는 것 외에 정작 중요한 이유는 승진 포기 때문이다. 현재 차장인 그는 부장으로 승진해야 하고, 결국 임원까지 바라봐야 서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지방에 머물고 있는 동안은 승진 경쟁도 적고, 현재 직급으로 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 정 씨는 "몇 년 지나 입사 동기 또는 후배가 승진해서 상사로 내려올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회사 그만두는 나이는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진급할수록 그만큼 쫓겨나기도 쉽다는 정서가 팽배하면서 아예 '오래 버티기'로 작전을 바꾸는 직장인도 적잖다. 이처럼 일찌감치 승진을 포기하면서 직장에서 역동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뒷방 늙은이 행세를 하려드는 30, 40대들이 늘고 있다. 한 공무원은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간부직 승진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농담삼아 '대통령도 못 건드리는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라며 "특별한 잘못이 없는 이상, 아울러 직렬별로 갈 자리가 구분돼 있기 때문에 상사가 싫어해도 다른 곳으로 함부로 보낼 수도 없다."고 했다.
◇ 감투는 좋지만 튀는 것은 용서못해
모 대기업의 경우,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몇 해 전 직급을 없앴다. 계장-과장-차장-부장-국장으로 분류되던 것을 팀장-국장으로 이원화했다. 후배가 팀장이 될 수도 있고, 선배가 후배 팀장의 지시를 받을 수도 있게 됐다. 업무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겠지만 호칭이 문제였다. 때문에 호칭은 직함을 생략하고, '~님'으로 통일했다. 업체 한 관계자는 "서울이나 다른 지역본부는 이런 호칭 문제가 금세 정착됐는데, 대구는 아직도 계장, 과장, 부장이라는 직함이 살아있다."며 "후배를 ○○○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불편해하고, 예전에 부르던 직함을 없애고 선배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것도 유난히 어색하게 여기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지역 정서도 문제다. 한 교수는 "프로젝트를 맡은 교수들은 젊은 간부급 공무원들이 호락호락하게 굴지 않으면 윗 간부들에게 줄기차게 험담을 하고, 공무원 역시 젊은 교수가 자기 의견만 고집하면 다음부터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체도 마찬가지. 지역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능력있어도 선배들과 술자리를 자주 하지 않거나 깍뜻하게 굴지 않으면 '버릇없는 X'으로 낙인 찍히고, 결국 괜시리 튀기 보다는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변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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