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음의 감기' 우울증

연령층 따라 다양한 증세로 접근

봄과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즉 기온과 일조량의 변화가 심할 때일수록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기분이나 의욕의 굴곡이 심해지면서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계절에 따라 기분상태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이 같은 증상을 '계절성 정동장애' 혹은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계절성 정동장애는 전체 성인의 약 4~12%에서 나타나며 그 중 여성 환자들이 약 70~80%정도를 차지하며 연령층은 30대가 가장 많다. 최근엔 특히 취업을 못한 20대와 육아에 따른 사회적 소외감을 겪는 30대를 중심으로 굳이 계절적 요인이 아니어도 정신병적인 우울증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 우울증은 가면을 쓰고 있다= '마음의 감기'에 비유되는 우울증은 일생에 누구나 한번쯤은 앓을 수 있는 증세로서 다양한 연령층에서 다양한 증세로 나타난다. 흔히 우울증에 걸리면 항상 마음이 어둡고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때로는 우울하다는 감정이나 생각의 표현보다는 신체적으로 불편한 증상만을 보여 우울증이 아닌 다른 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우울증이 가면을 쓰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소아기 우울증=초등학교 4학년인 A군은 지난해부터 수업시간에 산만하고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올해엔 등교 전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배와 머리가 아픈 증상을 호소했고 점점 학교가기를 싫어하면서 짜증을 심하게 부리기 시작했다.

이 경우 학교가기를 싫어하는 학습장애아로 생각하기 쉬우나 A군을 자세히 상담해 본 결과, 소아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케이스였다.

어린이들은 대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의 전형적인 우울증상과는 다르게 신체적 증상이나 행동상의 문제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두통, 복통, 틱, 구토, 야뇨, 체중감소, 식욕부진, 수면감소 같은 신체증상이나 반항, 배회, 공격적 행동, 등교거부 등이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소아기를 지나 사춘기에 접어들어도 시험에 대한 부담, 가치관과 자아 정체성의 혼란 등으로 인한 청소년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 때는 학업에 대한 흥미상실, 무기력, 주의 산만은 물론 음주, 무단결석, 약물탐닉, 성적 문란 등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 계절성 우울증=40대의 중년여성 B씨는 전신에 힘이 빠지고 늘 피곤하며 무기력을 느껴 내과를 찾았으나 별다른 이상이 없던 차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그녀가 밝힌 일련의 증상들은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며 자꾸 울고 싶고 낮잠 자는 시간이 많아졌고 단 음식이 당겨 최근 체중이 늘어난 것 등이다.

B씨는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불면증, 식욕감퇴, 체중감소와 달리 비전형적인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많은 이유는 호르몬의 차이, 월경, 임신, 출산이 관여할 수도 있으며 남녀간 사회적 스트레스가 다르며 그에 대처하는 능력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 여성의 뇌는 남성의 뇌보다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아 더욱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따라서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과 다르게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은 우울한 시기에 오히려 잠이 늘고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생겨 체중도 느는 게 보통이다. 이 경우 대개는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하게 된다.

◆노년기의 우울증=70대의 노신사 C씨는 평소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로 2개월 전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혹 실명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심했다. 이 후 계속 마음이 불안, 초조하고 기분도 울적해지는 기간이 늘면서 의욕도 잃어갔다. 머리도 텅 빈 것 같고 집중이 안 되고 기억력이 매우 떨어져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쌓여갔다.

C씨의 증상은 노년기 우울증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노년기 우울증의 첫 증상은 우울한 기분보다는 여러 신체증상이나 기억장애 같은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체 기능의 저하, 직장에서의 은퇴, 가까운 사람의 상실 등이 노년기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노년기 우울증을 이전에는 '가성치매'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노년기 우울증은 본인조차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환자 스스로도 '우울하다', '기분이 가라 앉는다'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또 가족들도 '나이 탓이려니', '노화가 진행된 것'으로 방치하는 일이 잦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뇌경색 이후 우울증을 초래하는 '혈관성 우울증'도 있으나 감정반응이 없고 언어장애나 무의욕증 등의 증상이 뇌경색의 증상과 유사해서 우울증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스러운 점은 노년기 우울증에 대해 적절한 항우울제를 사용할 경우 치료효과가 비교적 우수한 편에 속하다.

도움말=계명대 동산의료원 정신과 김희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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