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적인 말장난으로 가득 찬 시에 식상한 당신에게, 하잘 것 없는 신변잡기에 불과한 소설 읽기에 넌덜머리가 난 당신에게, 철학서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당신에게, 보다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온갖 처세술 나부랭이에 치인 당신에게 산서를 권한다."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 작가 심 산이 산서를 제안한다. '마운틴 오딧세이'는 그가 쓴 독서 에세이집이다. '산서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책 한 권으로 여러 책을 만나는 것은 선물세트 속에 담긴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즐거움이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죽음의 지대' 이노우에 야스시 장편소설 '빙벽' 정광식의 '영광의 북벽(개정판 아이어 북벽)'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 등 24권의 수기와 시, 소설이 실려 있다. 각각의 책은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더욱 풍요로워진 듯 하다. 소개된 책 중 7권을 제외한 나머지가 절판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수록된 책들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산시집이다. "여기는 정상/더 오를 곳이 없다/모두가 발 아래 있다!" 들어 본 것 같지 않은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고상돈 대원이 교신한 내용이다. '세계의 지붕끝'에서 고상돈 대원은 선배의 시를 외친다. 장 호의 시집 '너에게 이르기 위하여'에 수록된 시로, 제목은 '세계의 지붕끝'.
세계 최고봉을 향한 여성등반가들의 도전은 신선한다. 존 로스켈리의 '난다 데비' 닛타 지로의 '자일 파티' 남난희의 '하얀 능선에 서면' 제임스 발라드의 '엄마의 마지막 산 K2' 가 그것이다.
'자일 파티'는 서로의 목숨을 엮은, 자일을 묶은 파트너다. 책 '자일 파티'는 단순히 등정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버디 무비'에 가깝고 동성애 코드도 내장하고 있다. 조난 상황에서 구조된 두 여성(도시코와 미사코)이 이후 서로의 자일 파티가 된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자일 파티로 알프스 3대 북벽을 모조리 해치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의 살고, 각자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두 주인공이 산에 오르려고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삶을 완성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있다. 그들의 등반은 어쩌면 외부의 바위를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묘사된 산은 삶의 또 다른 표현인 지도 모른다.
"암벽등반에서 파티를 짜더라도 결론적으로 자기 혼자밖에 없어요. 상대방에게 기대거나 받아주려는 짓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죠. 자일 파티와 사랑이 싹튼다면 그 시점부터 두 사람은 절대로 자일을 묶어서는 안돼요." 산악회 동료의 "자일 파티 중 누구와 결혼할 가능성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도시코의 답이다. 자일 파티는 두 존재를 맺어주는 운명이며 교감이다. 그러나 그 끈에 의지하지 않는 것. 그 끈으로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일 파티다.
'엄마의 마지막 산 K2'는 가장 위대한 여성 클라이머로 칭송받는 '알리슨 하그리브스(1962~1995)'의 가족 이야기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아내였다. 그녀가 K2에서 죽은 후 아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엄마의 마지막 산에 가볼 수 있어요?" "그럼, 갈 수 있지. 꼭 가보자"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엄마의 마지막 산으로 떠난다. 그 여정을 담은 책이 '엄마의 마지막 산 K2'다.
엄마 알리슨은 첫 아이가 태어나던 당일에도 등반을 했다. 알리슨이 6대 북벽을 차례로 등반하는 동안 무려 반년 가까이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야영생활을 하며 기다린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결혼을 했다거나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그 권리가 유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알리슨은 자신이 원했던 삶을 최선을 다하여 살다 갔습니다. 나는 그녀가 행복하게 죽어갔다고 믿고 싶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등반에 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자 후원자였다. 그는 아내가 등반 못지않게 자신과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찾은 '엄마의 산'에서 아빠는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단다." 알리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 남편 역시 그녀의 후원자가 되면서 행복을 느꼈다.
사람은 냉정하게 자신이 뭘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시간을 늘리는 게 자신의 삶에 보탬이 된다. 심 산은 MBC 창사 특집극 '산' 주제가 후렴구를 좋아한다.
"왜 난 사는 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난 걷는 건지 어디가 나의 쉴 곳인지."
'산에 즐겨 오르는 전업작가' 심 산
61년생. 연세대 불문과 졸
시집 '식민지 밤노래' 장편소설 '하이힐을 신은 남자' '사흘낮 사흘밤' 시나리오 '비트' '태양은 없다' 역서 '시나리오 가이드' 등 다큐멘터리 '엄홍길의 약속'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공동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코오롱 등산학교 강사, 한국산서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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