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파동이 터졌다.
'값 싼 원재료 생산지'의 대명사였던 중국이 세계의 물자를 빨아당기는 소비의 블랙홀로 최근 급변, 콩 수입 물량 확보가 힘들어지면서 수입콩 부족사태가 불거진 것이다.
콩 뿐만 아니다. 거의 모든 농산물에다 이를 원재료로 쓰는 가공식품의 가격이 최근 '중국발 인플레'로 급등했고 물량 부족사태까지 찾아왔다.
어려워지는 살림살이속에 '다시 고물가 시대가 찾아왔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물론,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이 고작 5%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심각한 '식량 안보 위기' 우려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위기의 신호탄
경북 칠곡군 동명면의 출소자 복지시설인 '빠스카 식품'. 두부를 만들어 파는 이곳은 지난달말 날벼락같은 소식을 들었다. 두부의 재료인 콩을 공급해주던 '연식품조합'으로부터 '수입콩이 바닥나 요청하는 양의 절반 이하만큼만 콩을 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던 것. 돈을 줘도 수입콩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 곳 김레지나 수녀는 "콩이 없으면 두부를 못만드는데 여기 있는 10여 명 출소자들의 생계가 막막해질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수입콩 가격은 올들어 70%나 급등했고, 이마저도 공급이 모자라면서 수입되는 물량이 크게 줄었으며 결국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내년엔 수입콩 가격이 또다시 폭등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콩 수입을 하는 농수산물유통공사로부터 물량을 받은 뒤 업체들에게 배분하는 대구연식품조합 김대성 상무는 "국산콩을 쓰려해도 재배농가 감소로 값이 너무 뛰어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라, 겨울철 성수기를 맞은 콩 가공업체는 영업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연식품조합 측은 "향후 급식납품업체 등에서 두부 조달난 등이 벌어지면 급식업체가 계약업체에 대규모 위약금을 물어야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측은 "정부가 국내농가 보호를 위해 콩 수입물량을 지난해에 비해 10%정도 줄이는 정책을 펴면서 수입물량이 줄어든 요인에다 최근 국제 콩 가격 인상에 따라 지난달 일부 콩 수입 중계업자가 '가격이 너무 올라 수지가 안 맞는다'며 수입을 포기, 콩 수급불안이 빚어졌다."며 "최근 수입물량을 늘려 일단 콩 수급이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중국은 콩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5.7%나 줄어들었지만 소비는 오히려 늘어 콩 가격 급등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
대구시내 한 급식업체 대표는 "중국발 인플레 현상으로 올들어 모든 식자재 가격이 평균 15% 이상 올랐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속에서 고물가 태풍까지 불고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수입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2%가 올라 지난해 5월(11.3%) 이후 1년5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거인의 폭식
'소인국 나라를 찾은 걸리버'처럼 중국은 엄청난 물자를 빨아들이면서 식료품 가격을 올려놓고 있다.
피자헛과 미스터피자 등 대형 피자업체들은 지난달말 피자값을 일제히 올렸다. 가장 큰 이유는 피자의 원재료인 치즈가격이 폭등했기 때문. 치즈가격은 지난 4월 ㎏당 5천500원이던 것이 지난 10월에는 8천 원으로 불과 반년만에 40%가량 올랐다.
치즈 가격의 급등은 '중국 블랙홀'의 작용 때문.
중국 사람들은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엄청난 양의 치즈를 먹어치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결과, 올 들어 10월까지 중국의 치즈와 커드(curd·치즈의 중간 재료) 수입액은 4천308만 달러로 지난해(3천813만 달러)보다 34.6%나 증가했다. 2000년(392만 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11배나 늘어난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치즈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중국발 글로벌 인플레 현상'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치즈값이 지난해에 비해 70% 이상, 영국에서도 40%가량 치즈값이 치솟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거인의 힘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중국 인민은행이 발표한 '통화정책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5%에 이르러 당초 목표치인 3%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식품인 돼지고기 값은 1년만에 29% 상승하는 등 인플레이션의 신호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10여 년간 이어져온 중국 경제의 '고성장.저물가' 현상이 '고성장.고물가'로 전환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이는 다시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제를 둔화시켜 아시아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인접, 농수산물에 대한 '중국 의존'이 심한 우리나라로서는 최근의 '콩 사태'처럼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0년 곡물소비량은 2천381만 t이지만 생산량은 443만 t에 불과, 수입량이 1천937만 t에 이를 것으로 보여 전체 곡물 수요량의 81.4%를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