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즐겁게 영어를 배워 본 건 처음이에요."
6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 10동의 한 작은 공부방. 경로당 건물 2층에 아담하게 꾸며진 이곳에서는 한 미국인 강사가 한국인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 수업을 한참 진행 중이었다. 수업 주제는 '휴가(Vacation)'. "겨울방학이 언제 시작되느냐." "어디로 휴가를 가고 싶으냐." 는 등의 질문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짧지만 분명한 대답을 하고 제자리에 앉는 학생들의 표정에선 뿌듯함이 엿보였다. 활달한 몸짓과 웃음을 섞어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외국인 선생님의 모습에 학생들도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다. "선생님, 윌 스미스(미국 영화배우) 닮았어요!"
남구의 원어민 무료 영어 교실 '슬기샘 청소년 공부방'이 화제다. 남구청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중학생들을 위해 지난 9월 1기 학생 20명을 모집해 수업을 시작한 이 공부방은 매주 화, 목요일 오후 6~8시에 열린다. 문을 연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1기 학생 중 절반이 더 배우고 싶다고 강력하게 희망하는 바람에 2기 학생은 30명으로 늘었다. 2기 첫 수업이 시작된 6일에는 학부모들도 5, 6명이나 공부방을 찾아 큰 관심을 보였다.
공부방에서는 대구 미군부대 부목사인 랜디 차날트(Randy Chanault) 씨와 한국인 김숙명(46·여) 씨가 공동으로 수업을 맡고 있다. 랜디 씨가 주 강사로, 김 씨는 부강사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구청이 영어를 가르쳐줄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진 걸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김 씨는 남구 민주평통회장인 남편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미국에서 20여 년간 살다 5년 전 귀국했다는 그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고 있었다. 김 씨는 아파트 이웃인 랜디 씨에게 함께 일해볼 것을 제의해 한 팀을 꾸렸다. 한국인 학생들과 공부하는 소감에 대해 랜디 씨는 "Awesome!(정말 멋진 일)" 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영어에 대한 아이들의 열정이 너무 인상적이다. 즐겁게 웃으면서 공부하자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식 교재도 있지만 수업은 그날의 주제를 적어놓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체 각 부위에 대한 영어표현을 알아보기도 하고 미국 50개 주에 대해 2주에 걸쳐 배운 적도 있다. 칠판 앞으로 걸어나와 그림도 그려보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앉았다 섰다를 해보기도 한다. 게임도 빠질 수 없다. 워낙 쉴 틈 없이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다. 김희정(14·경일여중 2) 양은 "외국인 공포증이 없어졌고 웃다 보니 (영어 문장이)더 잘 외워진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영어는 너희에게 모국어가 아니라 세컨 랭귀지다. 발음이 이상하다고 부끄러워하지마라."면서 "아이들의 스펀지처럼 영어를 흡수하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이런 무료 영어 공부방이 더 많이 설치됐으면 좋겠다."고 뿌듯해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대구 남구 대명10동에 자리잡은 '슬기샘 청소년 공부방'이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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