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여 년 옹기 수집 석정우 씨

"투박한 이놈 알고보면 매력덩어리"

"옹기에는 우리 조상님들의 진솔한 삶과 애환, 그리고 예술혼이 깃들어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옹기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장독이라 부르며 천대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20여 년 동안 500여 점의 옹기를 모은 석정우(59·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씨의 옹기 사랑은 각별하다. 옹기가 지닌 장점과 가치를 '홍익석옹(弘益石甕)'이란 말로 표현하는 그는 옹기 수집가로 전국에 명성이 자자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열정적으로 옹기를 모으다 보니 전국의 수집상들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해올 정도란다.

석 씨가 처음으로 수집에 나선 것은 옹기가 아닌 주택복권. "1969년 우리나라에서 주택복권이 처음 판매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번듯한 집 한 채 값이 100만~150만 원이었는데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300만 원이었지요. 당첨되기 위해 복권 구입을 시작했지만 우리나라 국보가 복권의 바탕그림으로 실리는 것을 눈여겨보고 계속 수집하게 됐습니다." 복권에 이어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하는 우표 시리즈, 1원이나 10원짜리 동전을 모으기도 했다.

여러 경로를 거쳐 석 씨가 수집에 가장 열정을 쏟아부은 것은 옹기였다. "한 점에 몇백 만 원에서 몇천 만 원이나 하는 청자, 백자를 모으는 친구들을 따라하기 힘들어 저는 옹기를 수집하기로 했지요. 경제적 이유에서 옹기를 선택했지만 알면 알수록 옹기가 가진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김천, 울진, 포항, 영덕 등 경북 곳곳의 시골장과 마을을 누비며 옹기를 모았다. 옹기를 모으기 위해 1개월에 한 번 정도씩 출장을 갈 정도로 매달렸다. "마음에 드는 옹기를 만났을 때엔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요. 상대방이 팔려고 하지 않을 때엔 몇 번이나 찾아가 끈질긴 설득 끝에 옹기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옹기의 매력으로 석 씨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일제강점기엔 전국에 옹기공장이 3천 곳에 이를 정도로 옹기는 사람들과 호흡을 함께했지요. 그러다 보니 옹기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버드나무나 오리 등 아름다운 문양을 새긴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글귀를 새긴 것도 있는 등 옹기마다 한과 삶이 담겨 있지요."

특히 석 씨는 천주교와 관련된 옹기 문화재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무렵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으로 들어갔어요. 산에서 옹기를 많이 굽다 보니 천주교와 관련된 물품을 옹기 장인에게 의뢰, 만들어 사용한 경우가 많았지요." 옹기로 만든 묵주, 물이나 포도주를 담는 옹기병 등을 보면 당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등 전국 다른 도시들에는 옹기박물관이 있는 반면 대구·경북에는 옹기박물관이 없는 현실에 대해 석 씨는 매우 안타까워했다. "전시회를 열어볼 생각에 관공서에 문의했더니 담당 공무원이 '장독으로 무슨 전시회를 여느냐.'고 하더군요. 그 공무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얼이 깃든 옹기의 가치를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대구 달성군 가창면 스파밸리에서 처음으로 옹기전시회를 열게 된 데 대해 그는 매우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10여 년간의 한일호텔 근무에 이어 식품자재 납품업체인 태양식품을 경영하며, 옹기를 모아온 석 씨는 앞으로도 옹기를 수집할 계획이다. "옹기는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뿌리내린 명품인데도 몰라서 버리고, 깨버렸어요. 민초들의 삶과 혼이 서린 옹기를 제대로 알리고, 그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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