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을 위한 도시 디자인] ①보행자 전용교

런던의 도로는 불편했다. 이층 버스에서 바라 본 시내 모든 도로가 왕복 4차로를 넘지 않았고, 한낮에도 출퇴근시간 못지않게 차가 밀렸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풍스런 건물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런 멋진 건물들을 헐어내는 게 두려워 좁은 도로를 참아내고 있는 터였다.

런던 시내를 걷다 자연스레 마주친 템스강변. 걷는 게 더 행복해졌다. 보행자 전용교 때문이다. 자동차야 불편하든 말든 템스강변을 걷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는 런던의 도시 디자인 철학이다.

◆보행자 전용교, 밀레니엄 브리지

타워브리지~웨스트민스터브리지까지 런던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템스강변을 거닐다 한가운데쯤에서 교각 양끝에 달린 Y자 모양의 4개 서스펜션 케이블이 알루미늄 보행 데크를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다리를 만났다. 유독 사람의 왕래가 많은 보행자 전용교, 바로 '밀레니엄 브리지'다. 폭 4m, 길이 325m로 지난 2000년 개통된 '밀레니엄 브리지'는 영국의 거대 공공 디자인 사업, '밀레니엄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Norman Foster)가 디자인을 맡았고, 최첨단 하이테크 건축의 정수를 담은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단순한 디자인 작품이 아니라 잠자고 있던 런던의 나머지 반쪽을 깨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런던은 원래 극단적 불균형에 놓여 있던 도시. 템스강 북쪽에 있는 웨스트민스터와 시티 오브 런던 지구가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라면 두 곳과 마주한 서더크(Southwark) 지구는 가장 가난한 자치단체다. 가장 부유한 곳과 가난한 곳을 연결한 밀레니엄 브리지는 문화 및 상업 공간을 서더크에 집적시키는 효과를 가져 와 템스강 남북 대통합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제2의 보행자 전용교, 헝거포드 브리지

밀레니엄 브리지의 성공은 2002년 개통한 제2의 보행자 전용교, '헝거포드 브리지'로 이어졌다. 밀레니엄에서 2개의 다리를 더 지나 만난 헝거포드는 열차용 철교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위치한 현수교의 모습이었다. 런던 시민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무료로 통행하며 런던을 상징하는 훌륭한 경관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이곳 역시 단순한 보행자교가 아니라 디자인과 결합했다. 케이블과 기둥을 이용해 첨탑 모양으로 만든 아치에 야간 경관 조명 장치가 달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영국 런던에서 글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밀레니엄 프로젝트=런던 템스강의 보행자 전용교를 탄생시킨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거대 공공 디자인 사업이다. 정부 주도 아래 1995년 설립한 '새천년위원회'가 프로젝트 심사와 지원을 맡았는데, 프로젝트로 선정돼 사업비를 지원받으려면 일회성 전시든 영구적인 것이든 기존과 다른 개성과 디자인을 지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 결과 교량, 공원, 극장 등 전국적으로 3천 개, 런던에서만 200개 가까운 공공 건물의 신축, 리모델링 사업이 새천년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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