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어민 회화강사 사증제도 강화 놓고 '마찰'

"더이상 강사 확보 어렵다" 지역대학·학원들 하소연

법무부가 15일부터 원어민 회화지도(E-2) 사증제도를 개선하면서 외국인 강사에게 '범죄경력증명서', '건강확인서', '영사인터뷰' 등을 요구, 원어민 강사나 이를 고용한 학교·학원 측이 크게 반발하는 등 마찰을 빚고 있다. 학교·학원 측은 '까다롭고 복잡한데다 범죄인 취급하는 사증제도 개선은 개악과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법무부는 '부적격 원어민 강사로부터 학생과 교육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대학들은 원어민 강사 영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일대는 내년 3월부터 학생 1천400명을 대상으로 주 4시간 정도의 77개 영어회화 관련 강좌를 개설하기로 하고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출신 강사 20명을 추가 채용하려 했지만 이번 제도 개선에 반발하는 강사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E-2비자의 경우 만기가 1년짜리여서 법무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아포스티유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은 국가의 원어민 강사는 앞으로 한 해 한 번은 본국에 갔다와야 한다. 또 범죄경력증명서 발급 및 인터뷰 등은 기간도 오래 걸려 번거로운 것은 물론 학교와의 재계약 및 장기계약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장용종 경일대 교수학습지원센터 팀장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다 이동 비용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강사들이 '힘들다.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강좌를 개설해놨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대학뿐만 아니라 대구지역의 사설 외국어학원도 반발하고 있다. 까다로운 입국절차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한국에서 강사를 하겠다는 원어민 강사가 줄 것이 뻔한데다 이는 곧 강사료나 강사 소개료 급등을 부른다는 것. '질 낮고 값만 비싼 원어민 강사'가 더욱 많아질 우려가 크다는 게 학원들의 얘기다. 김병직 엔도버스쿨 원장은 "이번 사증제도 개선은 원어민 강사의 한국 기피를 부추기게 되고 강사 소개료가 크게 오르지만 수준 있는 강사가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어 잃는 것이 더 많다."며 "초·중·고교 및 대학에서도 원어민 강사 채용을 늘리는 데 오히려 제도가 발목을 잡는 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고급 원어민 강사 채용을 위한 필터링 제도는 필요하지만 제도 시행에 미흡한 부분이 많고 원어민 강사를 모조리 범죄자 취급하는 현 제도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출입국사무소나 법무부에 문의 및 항의 전화도 빗발친다는 것.

성한동 대구외국어학원협의회장은 "교육부의 영어교육 방침과 법무부의 외국인 출입 관리가 상충돼 정작 학생들의 교육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협회차원에서 정식으로 정부에 제도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는 회화지도 사증 발급의 자격 검증을 강화하고 부적격 원어민 강사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제도를 15일부터 시행하고 강력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원어민 강사의 가짜 학위, 대마초 흡연, 어린이 연쇄 성추행 강사 입국 등의 문제로 인해 외국어 교육에 대한 국민 불안이 크게 증폭됐다는 것.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관계자는 "기존 사증제도로는 범법자, 마약사범 등으로부터 학생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고 유관부처와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친 사안인 만큼 강력 시행할 방침이며 원어민 강사와 학교·학원 측의 계약기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단계별로 시행할 예정"이라며 "아포스티유 협약을 체결한 국가의 원어민 강사는 범죄경력증명서를 한국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이미 한국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는 강사에게는 불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 아포스티유 협약=협약국 간 공문서의 상호인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복잡한 인증 절차를 없애고 대신 공문서 발행국가가 이를 확인해주는 다자간 협약으로 정부가 발급하는 증명서인 '아포스티유'를 첨부한 공문서는 별도 공증절차없이 협약 당사국 내에서 공문서로서 효력을 인정받게 되는 제도. 캐나다, 중국 등을 제외한 전세계 92개국이 가입돼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