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高(고)3 아이들이 입시전쟁의 첫 전투를 끝낸 수능 성적표를 받았다. 아직 나머지 전쟁이 다 끝나려면 멀었다. 대학 선택의 눈치 전쟁이 남았고 논술 전쟁에다 면접 전투까지、뚫고 넘어야 할 격전지가 겹겹이 남아있다.
40여 년 전 필자 世代(세대)도 '대학입학 예비고사'라는 이름의 입시를 치렀다. 예비고사 성적으로 지원 대학 입학 여부가 결판나는 제도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 고3 또래들의 예비고사 성적과 저마다 열심히들 살아온 삶의 족적을 꿰맞춰 되돌아보면 두 가지 가설을 던져보게 된다.
일찍 피는 꽃이라고 꼭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는 것과 흔히들 말하는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더라는 체험적 깨달음 같은 거다. 다소 뒤처진 성적표를 든 아이들을 위로하자는 얘기라기보다는 대입 시험 하나가 인생의 현재와 미래를 다 결정지우는 것은 아니더라는 삶의 섭리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미국 역사보다 더 긴 370여 년의 전통을 지니고 응시생 중 고교 수석 졸업생만 3천 명이 넘는다는 전 세계 고교생의 꿈의 상징인 하버드대학, 그 하버드에서 역사상 최연소(28세) 종신교수직을 부여받고 46세에 21세기 첫 총장으로 선출된 로렌스 헤리 스머스 총장도 사실은 하버드 낙방생이었다. 부모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고 두 명의 삼촌 모두 하버드를 나와 노벨상을 받은 명문 학자 집안 출신의 수재가 입시에 떨어진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다른 대학에 들어간 뒤 불과 10년도 안 돼 하버드의 최연소 종신교수가 됐다. 그리고 다시 18년 만에 총장이 됐다.
아인슈타인, 그 역시 入試(입시)로 그의 숨은 천재성을 찾아내지 못했던 경우다. 16세 고교입학 시험 때 수학 빼고는 모든 과목에서 科落(과락) 수준의 점수를 받아 낙방했다. 외국어, 역사, 동물학들은 거의 빵점 수준이었다. 그러나 불과 10년 뒤인 26세 때 일반 상대성원리 논문을 발표하는 천재성을 꽃피워 보였다.
우리의 이순신 장군도 28세 때 치른 무과 과거시험에서 낙방, 4년 뒤 재수 끝에 겨우 3등급 丙科(병과)에 턱걸이했지만 첫 과거에서 일찌감치 벼슬한 무관들보다도 역사 속에서 더 빛나고 있다. 인재의 잠재된 능력과 소양은 보석이 묻힌 광맥처럼 한나절에 치르는 시험지 몇 장으로는 캐낼 수 없다. 제도의 한계와 허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우리 주변의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 세대도 예비고사 성적이 꼴찌 쪽에 더 가까웠던 친구 중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더 성공하고 훌륭한 삶을 보냈거나 살고 있는 친구가 의외로 많다. 물론 앞쪽에 들었던 친구 중에도 잘 산 친구가 없지 않지만 적어도 인생이 입시 성적순만은 아니더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늦게 핀 가을국화가 일찍 핀 봄 벚꽃보다 더 향기로울 수도 있다는 섭리와도 같다.
왜 그런 현실이 나타날까. 입시는 시간적으로 제도적으로 기억력 중심의 테스트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능력과 재능은 200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기억력은 모자라도 공간지각력이나 추리력, 창의성이 뛰어나면 아인슈타인이나 스머스 같은 창조적 인재가 나타난다. 기억력 중심의 입시 시험에 실패했다 해서 모든 재능과 잠재능력이 모자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입시 한번으로는 아직 누구도 勝者(승자)도 아니고 敗者(패자)도 아니다. 입시생들에게 용기와 함께 겸허함을 가지라는 뜻에서 '勝者와 敗者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같이 새겨보자.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진 뒷자리를 본다/
승자는 구름 위의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속의 비를 본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고 패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승자는 길이 막힐 때 다른 길을 찾고 패자는 길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승자는 남에게 배울 점을 찾고 패자는 시샘하며 남의 갑옷에 난 구멍만 찾으려든다/….
우리 청소년들, 입시 전쟁 한 번에 울고 웃지 말고 긴 인생에서 참 승자가 되자.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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