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이란 화성암의 일종으로 사문암이나 감섬석에서 추출되는 극세 섬유상의 광물을 말한다.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형태는 돌이지만 그 성질은 섬유라고 생각하면 된다. 석면은 열에 강하고, 강고성이 뛰어나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의 건축자재나 농촌가옥의 슬레이트에 많이 사용되었고,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등 약 3천여 종류 이상의 제품에 사용될 정도로 일상생활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흔히 석면을 "신이 인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까지 한다. 그런데 석면은 우수성에 비해 치명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석면에서 발생하는 분진을 장기간 흡입하게 되면 석면폐나 폐암, 악성중피종 등의 질환이 발병하게 되고, 석면질환은 현대의학 수준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의 질병이다. 질환의 특성도 10년에서 40년의 긴 잠복기간을 거친 후 어느 날 갑자기 자각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망하기 때문에 자신의 질병이 석면에 의해 발생하였다는 사실도 모르게 된다. 그래서 석면질환을 소리 없는 죽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석면제품을 직접 취급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석면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나 석면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석면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 이러한 석면의 위험성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석면의 제조,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석면에 대한 관리대책을 별도로 수립하여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석면에 대한 법적 규제나 통제 없이 수백만 t의 석면이 수입되었고, 이미 우리사회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에 걸린 것으로 공식집계된 환자만 해도 이미 46명에 달하고, 밝혀지지 않고 사망하였거나 지금도 악성중피종으로 고통받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의 수는 수십 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의 석면질환자가 발생할지는 예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석면피해와 관련한 판결이 있었다. 피해자는 1976년부터 2년간 부산에서 석면원사 등을 생산하는 회사에 다녔는데, 퇴사한 지 26년이 지나 악성중피종이 발병하였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소송도중 피해자는 유명을 달리하였다. 그리고 3년간의 긴 시간 끝에 지난 4일 마침내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亡人(망인)이 회사에 다니던 그 시절의 근로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망인과 동료근로자들은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면서 석면분진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호장갑이나 방진작업복을 전혀 지급 받지 못하였다.
방진마스크는 입사 시 한번 지급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분진을 집진할 수 있는 환풍기는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하더라도 가동을 않았다. 심지어 회사는 근로자들의 이직을 두려워하여 석면의 위험성을 근로자들에게 함구하였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회사의 잘못에 대하여 법원이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석면피해자들은 모두 석면소송을 통하여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이 번 판결은 흔히 석면소송의 1단계라 일컬어지는 직업성 질환에 한정된 것에 불과하고, 그것도 망인이 회사에 근무하면서 일했던 사진이 있었으며, 동료 근로자들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석면분진에 노출된 간접노출자들이나 석면제품을 사용한 소비자, 석면관련회사의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환경성 질환에 대해서까지 소송을 통하여 배상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과관계 입증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석면 문제는 궁극적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선 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석면관리종합대책에 대한 조속한 실천을 기대한다. 그리고 석면관련 회사에 다녔던 근로자들을 추적하여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건강검진과 석면제품의 사용 장소 및 분진 노출 정도에 대한 정확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의료지원과 보상이 가능하도록 석면피해구제특별법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망인이 다녔던 회사에는 지금까지 약 수천 명 이상의 근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갓 마치고 전국에서 온 10대 소년, 소녀들이었다. 지금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먹고살기 위해,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 몰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이해는 하겠다. 하지만 석면으로 인한 경제이익은 절대로 국가나 어느 특정회사의 것이 아니다. 그 이익은 국민의 생명과 땀의 대가로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익을 이들에게 돌려 줄 때가 되었다. 이들이 이승을 떠나기 전에.
이호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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