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마중물

대중 가수 인순이는 요즘 몹시 행복해 보인다. 그럴만도 한 것이 자신의 노래 '거위의 꿈'이 얼마 전 가요 차트에서 무려 30년 만에 1위를 했다. 최고의 가창력을 가졌으면서도 피부색으로 인해 남모르는 차별을 받아왔을 그녀가 뒤늦게나마 누리는 감격과 기쁨이 아무튼 굉장할 것 같다.

'거위의 꿈'은 멜로디도 좋지만 그녀의 세상살이 무게가 느껴지는 노랫말이 가슴에 스며들듯 절절하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도 같이 간직했던 꿈~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인간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호모 에렉투스(직립인간),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만드는 사람),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사람)…. 요즘엔 호모 노마드(이곳저곳 옮겨다니는 사람), 호모 디지털(컴퓨터 시대의 인간), 호모 자펜스(리모컨으로 채널 돌리듯 관심을 옮기는 사람) 등 21세기형 인간에 관한 '호모 시리즈'도 쏟아진다. 그렇다면 미래를 향한 꿈 역시 인간의 특장점일진대 '꿈꾸는 사람'도 하나 만들어질 법하다.

대입 수능시험 성적을 비관한 쌍둥이 자매가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망국적 교육 열풍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보릿고개 시절엔 모두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접어든 지금, 청소년들은 학교가 지옥 같다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노인들은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목숨을 버린다. 작년만 해도 하루 35.5명꼴로 세상을 등졌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꿈'이 사라진 탓은 아닐까.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이삼십년 전만 해도 펌프를 사용하는 가정들이 적지 않았다. 가끔 펌프에서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곤 했다. 그럴 때 물 한 바가지를 부어 힘차게 다시 펌프질하면 이내 콸콸콸 물이 쏟아졌다. 멈춰진 펌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건 한 바가지의 물, '마중물'이었다.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라도 아직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가라앉은 삶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마치 펌프 아래의 물을 위로 끌어올려 주는 마중물처럼 말이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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