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이 자전거로 슈퍼마켓에 가고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세계 자전거의 수도라 불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암스테르담 시는 1970년대부터 자전거를 위한 도시 디자인 정책을 도입했다. 차도와 자동차 주차장을 줄여 차 운전자와 승객에게는 이런 교통 지옥이 따로 없지만 자전거를 선택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자전거 전용 주차장, 대여점, 수리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위한 도로
암스테르담 시내 도로에는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더 많았다. 하이힐을 신고, 양복을 빼입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해보이기까지 했다.
우리처럼 인구 밀도가 높아 도로와 주차 공간이 항상 부족한 암스테르담은 일찍부터 자전거 수요가 많았고, 검소한 생활 태도를 강조하는 국민성 때문에 헌 자전거를 수선해 평균 1만㎞까지 타고 다닌다.
암스테르담이 자전거 천국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 같은 국민성을 제도와 시설이 뒷받침한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중앙역 담락 광장 일대는 우리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도로 구조로 돼있다. 이는 바로 자전거를 위해 도시를 디자인했음을 말해 준다. '인도-자전거도로-차도-트램(전철) 선로-인도(트램 정류장)-자전거도로-인도'로 구성돼있는 10차로지만 자동차에 내준 공간은 고작 2차로에 지나지 않았다. 도로 양쪽 끝에 있는 인도는 각각 1.5차로 정도씩 가장 넓게 만들고 똑같은 2차로 구조지만 자전거도로와 트램 선로는 왕복으로 설계해, 일방 통행만 가능한 자동차가 가장 불편해 보였다.
암스테르담은 고속도로를 제외한 모든 일반 도로에 보행자를 위한 공간과 자전거 전용도로를 의무화하고 있다. 자전거 전용로 바닥마다 이정표를 새겨 넣고 횡단보도에도 자전거 통행로와 신호등을 따로 설치한다.
◆자전거 전용 주차장.
주차장 또한 자동차보다 자전거 중심이었다. 자동차의 일방통행 구간이 많은 암스테르담은 어쩌다 주차장을 찾아도 몇 번을 돌아야하고, 주차료가 비싸 고작 몇 분을 주차하기도 겁나는 도시다. 그러나 자전거 무료 주차장은 시내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 도시 곳곳을 흐르는 운하마다 자전거가 늘어서 있고, 공공 건물과 역과 정류장 한쪽에는 자전거를 세워두는 시설이 반드시 있다. 단적인 예가 암스테르담 중앙역 자전거 전용 주차장. 자동차를 위한 주차공간은 아예 찾아볼 수 없지만 4층으로 된 자전거 전용 주차장엔 1만 대가 넘는 자전거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암스테르담 시는 전용 주차장을 표시한 자전거 지도까지 따로 판다. 대여점과 수리점도 함께 표시한 자전거 지도는 암스테르담을 찾는 자전거 관광객들의 필수품이 돼버렸다.
◆자전거가 만드는 거리
암스테르담의 자전거는 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스트리트 퍼니처 역할까지 담당한다. 2발, 3발, 4발 자전거가 각양 각색의 디자인으로 생동감 있는 거리를 연출한다. 간단한 2발 자전거에서부터, 안장에 아들을 태운 아버지, 짐칸을 뒤에 달아 장을 보는 주부, 지붕을 덮은 수레와 자전거를 연결한 '택시형'까지 암스테르담의 자전거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글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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