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여섯 시, 빈방
이 경 임
여섯 시
까닭 없이 편도선이 부어 오른다
생목이 조이는 어스름을 기어
냉방에 와 눕는 오후
손끝이 시리다
일몰은 잠결인 듯 창틀에 걸터앉아
목젖 가득 차오르는 하루를 털어낸다
뽑아낸 사금파리인가
창밖은 선혈빛이다
내부에 가둬 둔 그간의 목 메임도
뒤늦은 인사말처럼 방바닥에 흥건한데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여섯 시 그리고,
빈방
곳곳에 상념을 쳐낸 칼자국이 보입니다. '여섯 시/ 까닭 없이 편도선이 부어 오른다.'는 도입부는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군요. 여섯 시면 만상의 표정이 깊어지는 시간. 그 시간의 어스름을 기어 냉방에 와 눕는 모습은 다분히 비관적입니다.
살 속에 박힌 사금파리의 기억을 뽑아내자 창 밖은 온통 선혈빛. 일몰이 주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목젖 가득 차오르는 하루를 털어낸다.'는 내성적 진술이 대신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의 흔적들로 흥건한 내면의 풍경입니다. 아니, 풍경의 내면입니다.
숱한 타자와 부대끼면서도 철저히 구획된 도시 구조 속에 갇힌 존재. 내부에 가둬 둔 울분을 터뜨릴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 존재의 절망감이 생목을 죄고, 편도선이 붓게 합니다. 손끝이 시리고, 목이 메는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세상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오후 여섯 시, 빈방'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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