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겨울의 별미 연탄요리

익어가는 것이 어디 음식뿐이랴

추운 겨울, 김장김치가 곰삭아 한창 맛을 낼 무렵이면 각 가정에선 자주 칼국수를 밀어 먹었다. 멸치 우려낸 육수에 갓 피어난 월동초 등을 숭숭 썰어 넣은 칼국수 자체도 추억의 먹을 거리였지만 주전부리감이 부족했던 시절, 칼국수를 썰고 남은 부분을 석쇠를 얹은 연탄불에 고개를 푹 쳐박다시피 해서 구워먹은 밀떡의 맛 또한 겨울철 별미였다.

동네 구멍가게 앞은 꼬맹이들의 천국이었다. 연탄불에 설탕을 살살 녹여 만든 '달고나'의 달콤쌉싸름한 맛부터, 연탄 구멍 속에 쏙 집어넣어 익혀먹었던 쫀드기까지. 연탄 화덕을 내 놓은 동네 구멍가게는 볕이 잘 들지 않은 동네어귀에서 유일하게 불을 쬘 수 있는 장소였다.10원짜리 동전 하나로 잘 하면 한 두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속의 한 장면이 되버린 풍경들. 하지만 이제는 '연탄구이'라는 이름을 붙인 선술집들이 추억과 낭만을 되살려주고 있다.

◇ 연탄집 처녀돼지

아가씨들이 잘 익은 돼지 껍데기를 상추에 싸서 야무지게 씹는다. 20대 아가씨와 돼지껍데기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연탄불과 소주가 추임새처럼 붙으면 '특급요리'가 된다.

우리나라 사람은 돼지고기 중에 삼겹살을 선호하지만, 연탄불에 구우면 목살, 앞 다리 살도 맛이 일품이다. 값이 싼 편이라 양도 푸짐하다.

신천시장(대구시 수성 4가) 복개도로 초입 모퉁이에 7년째 성업중인 '연탄집 처녀돼지'. 어둠이 내리면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댄다. 드럼통을 잘라만든 식탁과 연탄화덕 12개가 놓여있고, 화덕마다 연탄불이 타오르고 있다. 이 집의 연탄요리 안주는 모두 돼지고기. 간장양념, 고추장 양념, 껍데기, 생목살 등이다. 하루 평균 100여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주인 유승태씨는 "허름한 분위기와 연탄 화덕, 돼지고기는 40, 50대 남자들이 즐기는 안주처럼 보이지만 손님 대부분은 20대와 30대, 40대 초반이다. 20대 아가씨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는 숯이나 가스에 비해 연탄은 불편해 보이지만 오히려 편리하다. 비용도 저렴하고 오후 5시에 불을 넣으면 새벽 5시까지 불이 살아있다고 했다. 불구멍을 열면 금세 활활 타올라 화력도 좋다고 했다.

동료 직원 5명과 함께 식당을 찾은 손님 김일중(36'회사원)씨는 "연탄에 돼지고기를 구우면 기름기가 빠지고 연탄의 불 맛이 배여 오묘한 맛이 난다."고 했다. 퇴근길에 동료들과 부담 없이 한잔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 마당갈비

자갈마당 입구 달성지구대 옆에 위치한 마당갈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입 소문이 퍼진 집이다. 이 곳에서 돼지갈비를 구운지 벌써 27년째. 마당갈비를 드나드는 손님들은 수십년째 단골인 70대 노인부터 10대 아이들까지 다양하다. 엄마, 아빠 손 잡고 온 가족이 '외식'을 했던 그 옛날 추억을 더듬으며 찾아오는 젊은 부부들도 꽤 된다.

메뉴는 딱 두가지 뿐이다. 돼지갈비와 돼지찜. 뼈가 붙어있는 양념된 생갈비를 연탄불에 구운 뒤, 먹는 동안 식지 않도록 불에 달군 토기에다 담아 낸다. 돼지찜은 동인동의 소고기로 만든 '찜갈비'를 돼지갈비로 변형시킨 것이다. 맵고 강한 양념맛이 포인트.

사장 김순필(54)씨는 "1980년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인근에 갈비집에 꽤 많았지만 지금은 다 문을 닫고 '마당갈비'만이 남았다."며 "수십년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단가가 아무리 올라도 고객의 입맛을 속이지 않겠다는 정직함일 것"이라고 했다.

◇ 동대구 터미널 포장마차촌

동대구 고속버스 터미널 북쪽 편, 히말라야 시다가 울창한 대로 아래 길쭉한 골목. 이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오징어 선단'처럼 불을 밝힌 포장마차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한쪽 끝에서 바라보면 그 풍경만으로 장관이다. 모두 25채의 포장마차가 일렬로 이어져있다. (요즘 영업중인 집은 15채에 불과하다.)

이 포장마차 촌의 가열요리에는 모두 연탄불이 사용된다. 돼지갈비, 닭갈비, 고갈비(고등어에 소금을 뿌리거나 양념해 구워낸 것), 꽁치 등이다. 닭똥집도 기름에 튀기는 대신 연탄불로 기름을 쏙 빼 쫄깃하고 맛이 일품이다.

포장마차 촌 초입에 자리잡은 '목로집' 주인 손연희씨는 "연탄불에 석쇠를 얹고 구우니 생선 비린내와 육류의 기름이 빠지는 대신 불내(불냄새)가 밴다."고 했다. 손님 정모씨는 "집에서 프라이팬에 구운 고등어와 맛이 전혀 다르다. 반찬이 아니라 심심해서 먹기에도 좋다."고 했다.

연탄불에 끓여낸 냄비우동도 별미다. 냄비우동 맛이 그렇고 그렇겠지만 높은 화력으로 순식간에 끓여낸 맛은 뜨거운 물에 면을 흔들어 풀어낸 냄비우동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맛있고 운치 있는 포장마차 촌이 위기에 처했다. 구청에서 2008년 2월말 철거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온 가게 주인들은 "갈 곳 없는데 나가라니 막막하다."며 한숨지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연탄 구이가 유독 맛있는 이유

'노가리를 구워도 연탄불에 구워야 제맛'이라고들 한다. 연탄불 피우고 살았던 그 추웠던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연탄물에 구울때는 특이한 맛과 향미가 살아있기 때문.

마당갈비 김순필(54)사장은 "연탄을 피울 때 나는 특유의 가스 냄새 때문에 숯으로 대체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숯은 연탄불에 비해 화근내(불냄새)가 적어 결국 연탄을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며 "불에 직접 익힌 냄새가 제대로 느껴져야 더욱 입맛을 자극할 수 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연탄이 완전 연소를 시작하게 되면 일정한 화력과 원적외선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불고기나 막창 등 육류를 구울 때 연탄을 사용하게 되면 직화구이와 같은 원리로 표면은 바싹하게 익으면서 육즙이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 주게된다. 고기 안의 육즙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므로 고기의 씹는 맛이 살아난다.

우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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