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색 男]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저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이 직장에 입사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는?" 흔히들 상상한다. 그리고 쉽게 결론 내린다. 그럼 이 질문에 답해보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작가 김연수는 우주 속 모든 것들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고, 그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인 동시에 하나"라고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1991년이다. 명지대 학생 강경대의 사망으로 시작된 이른바 '분신정국'. 91년 5월을 보낸 이들은 상처를 안고 있다. 김지하는 그 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고 했다. 김연수는 그 시대를 황지우의 시어를 빌려 말한다. "'대뇌와 성기 사이'에 사람들이 있었다" 고. "91년 5월 이전에는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는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고.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펼쳐들고, 한 쪽 귀로는 '노찾사'의 노래를 듣는 식이다. 그러나 '분신정국'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역사 속에는 깨알 같은 개인의 삶이 있었다. 김연수는 거대한 역사 속에 가려진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 속 각각의 인물은 과거사를 통해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더듬어 간다.

대학생 '나'에게는 애인 '정민'이 있다. 이들은 소위 '운동권'이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연인이 됐다. 끊임없는 이야기들 속에 '나'의 할아버지와 정민의 삼촌이 있다.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학병으로 끌려갔다. 바다를 메워 논으로 만들고자 했던 할아버지는 간첩으로 몰린 후 시체처럼 변한다. 할아버지는 의도와 상관없이 '나'에게 입체누드사진을 남겼고, 그것은 훗날 베를린에서 만난 '강시우'와 연결고리가 된다.

모범적인 고교생이었던 정민의 삼촌은 60년 수류탄 투척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경찰들에게 폭행당했다. 그 우연한 폭행은 그를 망가뜨렸고 결국 자살로 몰고 갔다. 그런데 자살하기 전 삼촌이 마약 소지로 체포될 때, 2대에 걸쳐 히로뽕 밀무역을 하던 '강시우'의 집안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그 사건(이를테면 일제강점기나 수류탄 투척사건 같은)만을 기억할 뿐, 그 속의 개인은 알지 못한다.

'나'와 정민은 그렇게 할아버지와 삼촌의 이야기 속에, 술과 자취방 속에, 그들의 나날을 보낸다.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이 '토끼몰이'식 진압 속에 죽어가던 날, '나'는 총학 투쟁국장의 파이프에 맞는다. '나'를 사복경찰로 오인했던 것. 열패감 속에 '나'는 학교를 떠나 병원 영안실로 숨어든다. 투쟁국장에게 발견된 '나'는 방북 예비대표로 뽑혀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하숙집 주인 헬무트 베르크와 강시우.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헬무트는 2차 세계대전 유대인 대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가스실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에게 연주해주는 일을 자원했다. 나치에게 부인을 빼앗긴 고통 때문이었다. 그런데 절망에서 시작한 그 일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제3세계 망명객을 돕고 있다.

'강시우'는 헬무트의 집에 있는 조작된 비디오 테이프에 등장한다. '나'가 강시우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디오 속 그가 가진, 할아버지의 것과 똑같은 '입체누드사진' 때문이다. 그는 '이길용'이었다가 '강시우'가 된 사람이다. 이길용이었던 그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우연히 광주에 갔다가 '한기복'이라는 인물과 동거하게 된다.

한기복은 5'18때 시민군이었다. 84년 교황 방한을 앞두고, '화해'를 말하는 교황을 암살하려고 한다. 터무니없는 그들의 계획은 어처구니없게 실패한다. 한기복은 "무등산 보기 부끄럽다"며 분신한다. 그의 곁에 있던 이길용은 얼떨결에 민주화 투사가 된다. 그는 대학 구내서점에서 일하면서 결혼한 여교수와 사랑에 빠지고 무수한 여대생들과 동침한다.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그는 서울대 법대생 '강시우'로 다시 태어난다. 안기부 프락치가 된 것이다.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된다. 사랑하게 된 '레이'와 무작정 베를린으로 왔고 '나'와 만난다.

'나'는 강시우의 과거를 듣던 중 그의 잘못된 기억을 발견한다. 그는 85년 완공된 63빌딩을 83년 완공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강시우의 기억을 바로잡기 위해 63빌딩 대신 다른 큰 건물로 기억하라고 한다. 강시우는 묻는다. "그렇게 하면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이 되는 걸까요?"

강시우의 말처럼 삶이란 어쩌면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당신의 어제를 말해보자. 당신이 기억하는 어제는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김연수는'삶에 대한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누구나 인생을 두 번 산다고 말한다. 첫 번째 인생은 어설프게 살아온 실제 인생. 두 번째 인생은 살아온 삶을 회고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것은 두 번째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전은희〈출판부〉kongone@msnet.co.kr

*김연수는=1970년 김천 출생. 성균관대 영문과 졸. 장편소설 ' 꾿빠이, 이상'으로 동서문학상 수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 수상.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대신문학상 수상.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 수상. 그 외 장편소설 '7번 국도' '사랑이라니, 선영아' 소설집 '스무 살'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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