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 일반인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제'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도 누군가 내년 어느 때 법원으로부터 '배심원 후보자로 선임됐으니 정해진 시간까지 법원으로 나와달라.'는 선정기일 통지서를 받게 될 지도 모른다.
국민 배심원 제도, 즉 국민참여재판은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해 판사의 간섭에서 벗어나 피고인의 유'무죄와 형량을 판단'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법정 다툼을 그린 외화에서 보는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연출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대구지방법원 엄종규 공보판사와 대구지방변호사회 권준호 변호사의 도움말을 빌어 국민참여재판과 관련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본다.
◇ 배심원은 어떻게 정하나
만 20세 이상의 국민은 원칙적으로 배심원이 될 수 있다. 다만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는 배심원이 될 수 없다.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일정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사람, 사건 및 재판 관련자, 훈련 중인 예비군 등도 배심원에서 제외된다.
법원은 미리 작성된 배심원후보예정자명부(행정자치부가 작성해 법원에 통보해 줌)에서 필요한 수만큼의 배심원후보자를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정한 후 배심원후보자에게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의 선정기일을 통지한다. 배심원후보자는 원칙적으로 선정기일에 출석하여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경우에는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다. 출석이 곤란한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동봉한 불출석사유신고서의 해당란을 기재한 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배심원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배심원후보자는 동봉한 질문표를 작성한 뒤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질문표에 거짓 기재를 하여 제출하거나 선정절차에서 거짓 진술을 하면 2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다. 질문표는 배심원 선정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재판 종료 후에는 즉시 폐기된다. 선정기일에 법원에 갈 때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배심원후보자가 반드시 배심원(또는 예비배심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절차를 거쳐 배심원이 되지 않으면 귀가할 수 있다. 예비배심원은 재판 중 배심원이 갑작스레 직무를 할 수 없을 경우를 위해 선정하는 것이며, 재판장의 재량에 따라 5명 이내의 범위에서 둔다.
국민참여재판은 충분한 준비를 거쳐 원칙적으로 매일 재판을 진행해 1~3일의 비교적 단기간에 끝낼 계획이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당일 재판 일정이 끝나면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은 원칙적으로 다음 재판 날짜와 출석 장소를 통지받은 후 귀가한다. 하지만 배심원 신변 보호가 필요한 경우 법원이 지정한 장소에서 국가의 비용으로 숙박할 수도 있다.
◇ 배심원은 무엇을 하나
배심원은 재판 중에 직접 피고인이나 증인에게 질문할 수 없지만 재판장에게 질문을 요청할 수는 있다. 질문 내용은 피고인 또는 증인에 대한 신문이 종료된 직후 법원에서 교부하는 서면에 질문사항을 기재해 제출하면 된다. 재판장이 허가한 경우에만 필기할 수 있다. 아울러 심리 도중 법정을 떠나거나 평의'평결 또는 토의가 완결되기 전에 재판장의 허락 없이 장소를 떠날 수 없다.
또 평의가 시작되기 전에 당해 사건에 관한 견해를 밝히거나 의논하는 행위, 재판절차 외에서 당해 사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조사하는 행위, 법률에서 정한 평의'평결 또는 토의에 관한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 등을 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배심원 직무와 관련해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요구하거나 약속한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한편 신변 보호를 위해 법정에서는 배심원후보자, 배심원 및 예비배심원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법원이 부여한 번호로만 부른다. 또 법원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등의 직무를 수행하였던 사람들의 개인정보에 대해 정보공개청구가 있는 경우, 그 사실을 배심원 등에게 지체 없이 통지하고 본인이 동의하는 경우에 한하여 개인정보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
권준호 변호사는 "대구의 경우, 적게는 10~20건이 많게는 30건 가량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모의재판에서 드러난 문제 중 하나가 배심원들이 감정적인 판단을 함으로써 양형을 가볍게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만약 처음 재판에서 이런 사실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면 이후 가벼운 형량을 원하는 피고인들이 잇따라 국민참여재판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나
재판은 배심원 선정→재판→평의'평결'토의→판결 선고 순으로 진행된다. 법원은 만 20세 이상 지역 주민 중 무작위로 배심원 후보자를 뽑아 면접을 거쳐 7명 또는 9명의 배심원을 선정한다. 배심원은 재판에 참석해 검사와 변호인의 법정 공방을 경청한다.
이때 배심원은 증언과 증거물이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것인지 판단한다. 법정 공방이 끝난 뒤 배심원은 별도 독립공간(평의실)에 모여 피고인의 유'무죄를 토의(평의)한다. 유죄와 무죄 결정(평결)은 배심원의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배심원 간 견해가 다를 때는 판사 의견을 듣고 다수결로 결정한다. 피의자가 유죄라고 판단될 때 어떤 형벌을 부과할지도 토의한다.
이후 배심원은 평결 결과를 판사에게 알려준다. 배심원 결정을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다. 배심원 판결은 구속력을 갖지 않는 권고의 성격을 띠기 때문. 다만 배심원 결정과 다른 판결을 내릴 경우 판결문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고, 이를 위한 증거 및 증인 확보 등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하면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서 처리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고, 결국 수임료 부담도 커질 수 밖에 없다.
권준호 변호사는 "일반 재판은 하루 10~20분 정도 진행되고, 여러 사건을 동시에 맡을 수 있지만 국민참여재판은 최소 며칠간 한 사건에만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수임료는 오를 수 밖에 없다."며 "다만 형사사건 피고인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높고, 국선과 사선 변호사 선임 비율이 절반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어떤 사건을 다루게 되나
살인'강도 등 무거운 형벌이 예상되는 범죄나 대법원이 규칙으로 정한 사건 중에서 기타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에 한해 열린다. 일단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대부분이 포함된다. 방화, 폭발, 교통방해, 독극물, 강도, 강간 등에 의한 살인 외에 뇌물, 약취'유인, 특수강도강간 등이 포함되며, 부정식품제조, 오염물질불법배출, 마약 등도 가능하다.
다만 이런 사건의 피고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국민참여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쉽게 말해 재판 성사 여부는 피고인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배심원'예비배심원과 그 친족에게 생명'신체'재산상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있어서 재판을 공정하게 수행하기 어렵다고 법원이 판단해도 열리지 않을 수 있다.
엄종규 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은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본원(대구지법)에서만 열리기 때문에 각 지원에 배당된 사건 중에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면 본원으로 이송하게 돼 있다."며 "내년 1월 1일 이후에 기소된 사건을 대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르면 1월 말 이후부터 첫 참여재판이 가능할 것이고, 전국적으로 연간 최소한 100~200건 정도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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