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그림에 나타난 음식은 형편없었다?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케네스 벤디너 지음·남경태 옮김/ 예담 펴냄

19세기 카메라가 발명되기까지 시각적인 기록은 전적으로 회화의 몫이었다. 원시인들이 암석에 새겨 놓았듯이 풍요나 다산에 대한 기원, 신에 대한 기록, 염원, 전쟁 등은 물론 일상까지 모든 영역에서 회화는 짧은 기억이 할 수 없는 부분에서 톡톡한 역할을 해왔다. 이 중 회화가 기록한 일상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코드가 다양하게 담겨 있다. 사물을 바라보고 그림에 담아내는 작가의 관찰력이 담아낸 당대의 문화상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대학의 예술사 교수인 케네스 벤디너는 '노련한 풍속의 관찰자'로서의 시각을 미술로 돌렸다. 벤디너가 돋보기를 들이댄 것은 "대담한 르네상스 시대부터 민감함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까지의 미술"이다. 주로 물질적 만족감을 표현하는데 치중했던 시대에서부터 음식의 위무적 효과를 조롱하기 시작한 1960년대 팝아트, 그 강도가 좀더 높아진 1970년 이후의 작품들이 '음식'이란 친근한 소재를 통해 분석되고 있다.

영양학, 철학적 추론, 개인사를 바탕으로 음식의 맛을 분석한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맛의 생리학' 격언을 인용하면서 벤디너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간결하게 서술한) 점을 본받아 짧은 분량으로 음식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전제로 벤디너는 각 장에서 음식의 재료를 구입(시장 풍경), 요리(식사 준비), 섭취(식사 시간)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추적한다. 순전히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음식의 표현을 매우 색다른 관점에서 다루기도(음식의 장식과 상징) 한다.

과거와 현재의 음식과 식생활 전반을 검토하면서 정물화, 춘화, 사냥 그림, 술, 시장, 메뉴, 식사하는 사람 등을 두루 조사한 뒤에 그림 속의 상징들을 풍부하게 버무려 놓았다. 낙관적이고 인간중심적인 르네상스 음식 회화 정신, 음식을 표현한 그림에서 느껴지는 풍요와 성공, 성취 등의 이미지도 방대한 그림과 해박하고 재치 넘치는 해설과 함께 복원해 냈다.

벤디너에 따르면 "종교와 의학에서는 음식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지만 회화에서는 그 지위가 사뭇 초라했다."고 한다. 실제로 "16세기 이래로 예술 이론가와 학자들은 정물화, 그 중에서도 특히 음식을 다룬 정물화를 예술적 위계의 맨 아래에 놓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아마도 '낯익음'이라는 것이 벤디너의 생각이다. "음식은 모든 사람이 늘 접하는 극도로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어서 특별한 고려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조차 저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벤디너의 분석을 따라가 보자. 안니발레 카라치의 '푸줏간'에서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도살자는 물론이고 소비자 가운데 한 계층인 군인도 등장한다. 희극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그림이다. 이에 반해 17세 렘브란트 반 레인 작 '도살된 황소'나 20세기 샤임 수틴 작 '도살된 황소'에선 고깃덩어리만을 담아내 괴기스런 느낌을 전달한다.

20세기 들어 제작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주방 스토브'나 앤디 워홀의 '200개의 수프 통조림' 같은 팝아트 작품은 대량생산과 소비라는 현대 식품산업의 현실과 대량 마케팅의 공포를 담고 있다. 이처럼 벤디너는 식습관, 계급 차이, 새로운 식품, 문화적 연관성, 다양한 사회와 시대의 종교적·의학적 믿음 등을 두로 살펴 회화 작품에 대한 평가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미술의 대중화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요즘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각종 미술 관련 서적 중에서 독특한 시각과 새로운 풀이가 쉽고 재미있게 전개된다. 324쪽. 1만 8천 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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