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가계부를 덮고 2008년 새 가계부를 펼치는 때가 왔다. 한 평범한 40대 주부의 가계부를 엿보면서 '2007년 주부들의 초상'을 그려봤다.
▶"가계부 보면 우울해져요"
"수입이 들어왔는데 가계부에 적지 않으면 돈이 금방 없어지고 잃어버린 느낌이 들더군요. 계획있는 지출을 하는데 가계부는 도움이 됩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26년 동안 매년 빠짐없이 가계부를 써온 이정희(46·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씨. 많지 않은 남편 월급에 의존해 다섯 식구가 생활하는 평범한 가정의 주부다.
하지만 요즘 가계부를 쓸 때마다 이 씨는 우울하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힘들었다. 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도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했다. 지난달 아파트 관리비는 15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만 5천 원을 훌쩍 넘어섰다. 채소값이 오르면서 식비도 덩달아 늘었다.
9월 27일부터 10월 28일 지출내역을 보면 세 아이의 학원비가 150만 원으로 전체 생활비의 절반을 차지했다. 영어·수학·과학 등 학원 수강료와 학습지 비용이다. 생활비가 유난히 많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좀체 옷을 사주지 않는데 하도 졸라서 무리를 했다. 급한 일 때문에 택시를 자주 타서 교통비도 많이 나왔다.
"매달 가계부를 정리해보면 적자입니다. 남편 월급으로는 살기가 빠듯합니다. 좀더 절약해야겠습니다. 외식과 의류 구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택시 이용을 줄여야 되겠습니다."
가계부를 보면 부부에게 지출된 것은 거의 없다. 부부가 옷을 사 입는 경우도 없고 외식도 아이들 때문에 한다. 부부에게 쓴 것은 아파서 간 병원비가 유일하다. 병원비도 매년 오른다. 진료비는 지난해보다 1만 원이 올랐다.
이 씨의 가장 큰 고민은 매년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 아이들에게 좀더 많은 학원을 다니게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또래와 비교하면 학원수강도 적은 편이다. 고교 선행학습을 하게 되면 100만 원의 학원비가 추가로 드는데 한숨만 나온다.
▶웃을 수 있는 가계부 썼으면
이 씨가 올해 쓴 가계부는 한 기업체의 다이어리다. 친구들로부터 여성잡지 부록이나 은행에서 제공되는 가계부를 얻어 썼지만 올해는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로 줄을 그어 수입, 식비, 외식비, 교육비, 특별비, 의료비, 세금, 적금, 교통비, 문화비, 생활잡비 등 여러 항목으로 나눴다. 매달 A4지에 지출내용을 꼼꼼히 기록해 가계부에 붙여둔다. 결산일은 카드대금이 빠져나가는 날을 기준으로 잡았다.
내년 가계부도 아직까지 구하지 못했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쓰지않는 다이어리에 직접 줄을 그어 사용할 예정이다. 이 씨는 내년에는 웃을 수 있는 가계부를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 씨는 "해결책은 절약밖에 없다."면서 "아이들 먹이는 것은 아낄 수 없기 때문에 옷과 교통비, 관리비를 아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가계부를 아이들한테도 보여준다. 아이들이 옷 사달라고 조르면 아빠 월급과 가계부를 보여주면서 무마시킨다. 아이들도 엄마를 닮아서 용돈기입장을 곧잘 쓴다. 돈이 100원이라도 모자라면 하루종일 고민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새해부터 상수도요금이 오른다는 안내문을 보면서 다시 우울해졌다.
"물가가 안정됐으면 좋겠습니다. 의료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남편 월급에 비해 지출이 적게 나왔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내년에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 저축을 좀더 하고 싶네요."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 가계부 잘 쓰는 법 '26년 주부의 노하우'
가계부 26년 경력의 이정희 주부는 남다른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정희 씨로부터 가계부 쓰는 요령을 들었다.
▶나만의 가계부를 만들었다=내가 만들어서 쓰는 가계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가정에는 교육비와 의료비 비중이 높다. 하지만 여성지와 금융기관의 가계부는 필요없는 항목이 많다. 부피가 두꺼워 불편했다.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면 자로 긋는 불편함은 있지만 오히려 애정이 생긴다.
▶매달 지출내역을 정리했다=도대체 내가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 어느 항목에 대한 지출이 많은지를 점검해본다. 교육비, 식비, 의료비, 세금 등 항목을 정해서 매달 통계를 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절약해야 되는 항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용카드구매액은 따로 정리했다=신용카드로 물품을 구매하면 당장 돈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지출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그래서 카드를 쓰고 나면 금액을 꼼꼼히 적어놓는다. 중간중간 체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소비를 좀더 줄여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금지출과 카드대금 지출을 따로 적어둬 중복되는 부분이 없도록 한다. 카드는 하나만 사용해서 포인트를 적립해 사은품을 받았다.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세금의 자동이체 날짜를 기록해둔다=보험과 적금, 급식비, 휴대폰요금, 도시가스요금 등 자동이체 액수와 날짜를 가계부 앞장에 적어둔다. 돈이 빠져나가는 날에는 통장에 돈이 들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연체료가 나오지 않는다.
▶할부금액은 매달 나눠서 모아둔다=부담이 되는 할부액은 한번에 내면 부담이 된다. 우리 가정의 경우 매년 6월 자동차보험료를 내야 하고, 매달 정수기 할부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한번에 나가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필요한 금액을 매달 나눠 적립을 해놨다. 이건 따로 봉투에 넣어두고 필요한 달에 지불한다.
모현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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