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아홉 시 사십 분

걸어서 십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직장이 있어서 날마다 같은 시간대에 집을 나선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이나 내 눈을 붙잡는 풍경들은 날씨나 계절이 바뀌는 것 외에는 고정되어 있다.

항상 만나게 되는 첫 번째 풍경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대여섯 살쯤 된 여자 아이이다. 어떤 날은 주변 사람들 앞에서 전날 배운 노래도 부르고 춤도 나풀거리며 재롱을 부릴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투정부리며 울고 있을 때도 있다. 생일잔치가 열리는지 머리에 미스코리아 같은 왕관을 쓰고 화사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을 흔들며 차에 타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곳을 벗어나면 소공원이 나온다. 주로 공원 앞에 있는 병원의 환자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모여 앉아 조곤조곤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맞은편 농구 골대에는 방학을 맞아서인지 아침부터 청소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왁자지껄 떠들며 운동을 하고 있다.

애완견까지도 나와 산책하는 풍경을 보면 출근길이지만 걸음을 세워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싶어진다. 울창한 아파트 숲에서 유일하게 사계절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소아과와 정형외과가 함께 있는 병원 건물을 지나게 된다. 아기를 업고 정신없이 병원 문을 들어서거나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나오는 엄마들을 보면 지난날 아이들을 키울 적 생각이 난다. 위층의 외과 병원은 거의가 장성한 자식들이 보호자가 되어 연로한 부모님을 부축해 들어가곤 한다.

이어지는 풍경은 어린아이를 차 안에 두고 조그만 좌판에 양말을 파는 장애인 부부이다. 어떤 날은 잠긴 차 안에서 아이가 창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필요하지도 않은 스타킹이나 덧신을 사기도 한다. 노점상들을 단속하는 날이면 남자는 망가진 좌판을 목발로 내려치며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젊은 아기 엄마가 흩어진 양말들을 제자리로 챙겨 담는 모습이 내 마음을 짠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주유소 앞을 지나게 된다. 아무리 허둥지둥 나왔어도 그곳에 걸린 벽시계를 보고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딱 아홉 시 사십 분을 가리키고 있어서 지각할 걱정은 없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큰 사거리에 걸려 있는 제법 커다란 벽시계여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쳐다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의 스케줄에 맞추어 종종걸음을 치기도 할 것이고 늦추기도 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몇 년 동안 그 시계를 믿고 출근을 해왔다. 퇴근은 아침처럼 정확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일정은 끝났으니 다른 길로 해서 돌아오거나 거의 관심 밖이었다.

어느 날 분명히 그 시계의 시간에 맞추어 출근을 했는데 지각이었다. 지각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기까지 하다가 퇴근길에 주유소 앞을 다시 지나오게 되었다. 여덟 시쯤 되었을 시간인데도 시계는 아홉 시 사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많은 날들을 무의식 속에서 시계에 속아 살아온 것만 같아 어이가 없었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잊고 멈추어선 고장 난 시계를 보니 나도 저 시계처럼 몰랐거나 착각했다는 변명으로 저질러온 잘못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틀린 시곗바늘을 바로잡아 주거나 때맞추어 건전지를 갈아 주는 것처럼 내 인생에서도 한쪽으로 기울었거나 고장 난 부분을 점검하며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둠이 여러 겹 내려앉은 소공원의 벤치에 앉아 시간의 연속성이 변하게 해준 하루와 한 해를 뒤돌아본다. 마음을 터니 몇 개의 추억들이 반짝 떨어지기도 하지만 후회스런 일들이 더 수북이 쌓인다. 어중간한 아홉 시 사십 분의 시곗바늘 밑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새날 새해라는 하얀 편지지에는 또 어떤 사연들을 쓰며 살아가게 될까?

김 영 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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