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비전을 공유하는 리더

리더가 조직에서 하는 기능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면 무엇보다도 비전을 창출하고 구성원에게 제시하는 작업과 그것이 모두에게 속속들이 스며들도록 설득하는 일을 들 수 있겠다.

존 코터라는 경영학자는 그의 저서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라는 책에서 이 작업을 간명하게 설명하기를 리더란 먹구름이 밀려오는 들판에서 피크닉 나간 가족에게 "여기를 떠나 저기 큰 나무 밑으로 가자, 그러면 비를 피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교보생명의 신창재 회장은 "이불 밑에 발 묻고 있으면 지금은 따뜻할지 모르겠으나 곧 식는다. 빨리 밖으로 나가서 땔감을 구해야 한다."라고 구성원을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구성원에게 보여줌으로써 모두 그 그림이 달성되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이 비전의 제시, 설득이다. 그러므로 비전은 구체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하자는 말을 "자가용 타고서 친정에 가네."라고 한마디로 설파했다.

많은 국민들이 조국 근대화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딱딱한 말보다 자가용 타고서 친정에 가는 그림을 더 절실하게 가슴에 새겼다. "일등 기업이 되어서 사회에 공헌하자."라는 말은 구성원 입장에서는 공허한 말이다. 그것보다는 "우리 회사가 매출 일등을 하면 사내에 기혼 여성 직원을 위한 보육원이 설치된다."라는 말이 훨씬 더 와 닿는다.

두 번째로, 비전은 리더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구성원들이 막연히 생각하고 있으나 표현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대신 표현해 주는 것이 훨씬 더 강한 생명력을 얻는다. 조직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조직이 잘되기를 바라고 자기 나름으로 생각이 있다.

여러 사람의 생각 중 공통분모를 추출해 그림으로 만들어낸 것이 비전이다.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낸 후 여기에 리더의 철학을 더해 비전이라는 형태로 구성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비전의 설득 작업이다.

현재의 정치 상황을 차용하여 예를 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청년실업 해소인지, 남북평화시대의 도래인지, 전반적인 경제성장인지를 알아내는 작업 후 리더의 생각을 더해 또렷한 그림으로 제시해 주는 것이 비전의 설득 작업이라는 것이다. 비전은 리더가 제시하는 것이나, 리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일단 만들어진 비전이 구성원들 사이에 얼마나 잘 공유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 화려한 수사학보다는 진솔한 표현을 되풀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수사가 화려하면 청중이 듣다가 길을 잃게 된다. 어눌하나 진솔한 표현으로 지속적으로 말해야 한다.

잭 웰치는 오십 번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나니 임원들 사이에서 자기 말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더라고 술회했다. 조선시대 영조는 실록에 의하면 탕평 두 글자를 수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즉 리더의 지속성의 원천은 구성원을 깔보지 않는 데에 있다.

엘리트 의식에 가득 찬 리더는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므로 구성원들이 응당 모두 이해하고 실천할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사람의 속성이란 그렇지 않다. 꿈의 씨앗이 자기의 것이라 해도 또렷한 그림으로 제시되면 남의 것으로 여긴다. 말하고 또 말하되 마치 리더의 정성이 부족해서 아직 잘 못 알아듣는 듯이 말해야 한다.

적당한 측정 도구를 만들어서 구성원들 중 몇 퍼센트가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작업은 필수이다.

이틀 뒤는 역사적인 대통령 선거일이다. 기업의 리더에게 적용되는 것 중 많은 것은 국가의 리더에게도 적용된다. 유권자, 즉 국가 구성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느 후보가 자기의 마음속에 와 닿는 비전을 간명하게 제시하는가, 그 비전의 씨앗은 유권자의 마음속에 있던 것인가, 후보가 자기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얼마나 진지한가, 이런 것들이 리더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기업에서는 주주가 대표이사를 선출하고, 우리 사회는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선택한다. 내일 모레는 한국주식회사의 주주총회일이고, 우리 모두는 이 회사의 주주이다. 현명한 선택을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김 연 신 한국선박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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