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직업이 아마 큐레이터가 아닐까 싶다. '신정아 사건'으로 불거진 큐레이터의 세계는 일반인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수성아트피아 전시팀장 이미애(35) 씨 역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신정아 식으로 로비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이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큐레이터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노가다'에 가깝다는 것이 이 씨의 말이다.
"미술 작품의 전시뿐 아니라 포장과 운반까지 도맡아야 해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라요. 소장자에게 고가의 작품을 안전하게 전달해야 전시가 끝나거든요. 우아한 모습 뒤에는 고생스런 막노동이 많아요."
공연팀장 박정숙(32) 씨도 마찬가지다. 개관 후 8개월간 66개의 공연을 기획, 수성아트피아를 명실상부한 '명품' 공연장으로 널리 알리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동안 수성아트피아의 무대를 다녀간 출연진은 금난새 조수미 등 화려하다.
이는 예산이 많다고 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수성아트피아는 지역에서 유일하게 기술직을 제외하곤 실무인력 100%가 여성만으로 꾸려졌다. 여성만의 뚝심에다 섬세한 감수성이 덧입혀진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성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행사를 만들어왔다.
오전 시간대 클래식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지역 최초 상설 마티네 콘서트는 회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을 타고 주부들이 모여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다과를 준비했는데, 이것이 주부들의 마음에 와닿았나봐요. 늘 가족들을 대접하는 입장이다가 모처럼 대접받는 기분이 좋았다고들 하세요." 박 씨의 말이다.
가끔은 과감한 시도도 저지른다. 이 씨는 백남준 전시 때 전시 벽면에 빨갛게, 까맣게 페인트를 칠해버렸다. "백남준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그저 흰 벽에 전시하진 않았을 거예요. 전시장도 하나의 무대니까요." 물론 전시가 끝나고 페인트를 일일이 벗겨내야 했지만 말이다.
100% 여성팀워크를 자랑하다 보니 여성들의 '수다'가 때로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은 옛말이다. 각자 일은 다르지만 서로 자극받아가며 긍정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날줄과 씨실이 만나 엮어지면 전체가 어우러지는 모양새로 거듭난다.
이 씨와 박 씨는 여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 "여자들은 오래 못 있던데." 이전 직장에 입사할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그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주말은 물론 명절까지 반납해야 했고 오후 9시 이전에 퇴근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회식은 밤 12시에 딱 한번 해봤다. '일과 결혼했다.'는 말이 꼭 맞다.
"짧은 시간 내에 개막 공연과 전시를 준비해야 했는데, 이를 두고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했어요. 앞으로 몇 번의 기적을 더 만들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최세정기자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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