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라 시민권이 있어도 내가 묻힐 곳은 오직 경북 상주뿐입니다."
미국 뉴욕주 역사상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명예 시민증을 받은 도동환(69) (사)민족문화영상협회 회장이 '미국에서 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지난달 21일 뉴욕한인청과협회 주최 '추석맞이 민속대잔치'에서 뉴욕주 롬(Rome) 시정부로부터 시민권을 받았다. 뉴욕 한인회장을 하면서 매년 씨름, 제기차기, 연날리기, 성묘행사 등 전통문화 이벤트를 준비했고 첫 해 3천 명에 불과하던 회원도 22만 명으로 불려놨다. 뉴욕정부가 15년간 해 온 그의 '한민족 문화 전도사'로서의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도 회장은 원래 '영화인'이다. 대구대 2년을 마치고 자유극장 3층에 위치한 경북영화사에 입사한 뒤 40여 년간 영화제작에 관여했다. 현재까지 만든 영화만 50여 편에 달하고 20여 편은 원본 필름을 보관 중이다.
영화제작은 그에게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보게 했다. 1964년의 처녀작인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전국 관객 300만 명을 그러모은 '대박' 작품. 일류 배우 개런티가 10만 원이던 당시 5천만 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도 회장이 챙긴 몫은 1천만 원. 이를 발판 삼아 기획한 영화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다.
4년 뒤 '상해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 선생'이 실패하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8천만 원짜리 초대형 블록버스터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마저도 팔아 치워 월세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당대 최고 인기를 끈 '007 시리즈'에 밀린 것.
빚쟁이에게 쫓기면서도 영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상주에서 발생한 부자 동사(凍死)사건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눈보라 속 귀갓길에 아버지가 쓰러졌고 아들이 자신의 점퍼를 벗어 껴안았으나 끝내 사망한 사건이다. 이를 '아빠하고 나하고'란 제목으로 영화화했고 12만 명의 관객을 그러모아 재기에 성공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당시 대구 명덕초등학교 5학년생 이윤복 군의 수기였고 '아빠하고 나하고'는 상주 화서면 사산초등학교 2학년 정재수 군의 일기였다. 도 회장은 "고향의 두 초교 5학년생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영화 제작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자꾸 마음이 당긴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이 동시에 실시한 온라인 투표 '한국 영화 10선'에서 자신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몬트리올 영화제 제작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영화는 전체 네티즌 과반수의 지지를 얻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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