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나무만 한 그루 서 있는 시골길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어떤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하다.'라고 에스트라공은 푸념한다. 이 희곡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기다림'이다. 고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어디에도 존재한다.
이 연극을 처음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도는 신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베케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서 이 극을 공연했을 때 수감자들은 고도란 바로 바깥세상과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식민지 시대의 관객에게는 조국해방을 의미했을 것이고 70, 80년대에는 민주화가 고도였을 것이다. 고도는 구체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이 처한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엇을' 기다리느냐보다는 '어떻게' 기다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었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는 여전히 답답하고 혼란스럽다. 이 모든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학생부, 수능, 대학별고사라는 입시의 3대 요소에 대해 이해 당사자 간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부를 많이 반영하라고 요구하는 교육당국과 학교 간 학력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학생부를 신뢰하지 않으려는 대학이 서로 줄다리기를 하다 보니 외형 반영 비율, 실질 반영 비율 등과 같은 이상한 용어들이 생겨났다. 논술 가이드라인을 지키라는 당국과 조금이라도 변별력을 높이려고 하는 대학 사이의 머리싸움은 통합논술이라는 새로운 논술 형태를 낳게 했다. 이런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수험생과 학부모이다.
9등급으로 표기된 성적표를 들고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는 나무만 한 그루 달랑 서 있는 황량한 무대에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는 두 주인공과 같다. 극중에서 블라디미르는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는다.'라고 절규한다.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표현하는 명대사로 꼽힌다. 그렇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수험생들의 고통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너무 무심하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지금 기다리는 것은 영혼을 구원해 주는 신이 아니다. 요행에 의한 합격도 아니다. 한 문제 실수 때문에 치명적인 손해를 보지 않는, 학생 자신이 가진 실력대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대입제도,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인 것이다. 그들의 충혈된 눈과 처절한 절규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수험생과 학부모를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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