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안견·신사임당·정선…소설같은 옛 화공들의 작품세계

고흐가 우울함과 광기에 미쳐 자기의 귀를 잘랐다는 얘기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야기. 하지만 고흐보다 1세기 앞선 조선시대 화가 최북(1712~1786)이 송곳으로 분을 참지 못해 자신의 한쪽 눈을 찔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가 정선, 심사정,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후기 4대 화가에 꼽힌다는 걸 알고 나면 놀라움은 배가 된다.

화가가 꿈인 어린 자녀에게 존경하는 화가를 물으면 십중팔구 피카소, 고흐다. 김홍도나 정선 같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그림 그리는 기술자로밖에 대우받지 못했던 우리의 옛 화가들이 지금도 아이들의 꿈조차 얻을 수 없는가 씁쓸한 생각이 밀려든다.

새로 나온 책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조정육 글/길벗어린이 펴냄)'은 안견, 신사임당, 정선, 심사정, 장승업 등 조선의 붓 솜씨를 빛낸 옛 화공들에 대한 청소년용 인문학서다. 책 속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작품 세계가 어떠했는지 어떤 빛깔을 가진 화가였는지 학교에서도 배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과서에 실린 작은 그림들을 통해 그저 '김홍도는 풍속화가였다, 정선은 진경산수를 그렸다.'는 식으로 얻은 짧은 정보가 전부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전통 미술사 서적이라도 펴들라치면 지루하고 딱딱한 해설조의 글 때문에 얼마 못 가 책을 덮기 일쑤였다.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은 꽤 즐겁게 읽었다. 주인공의 작품세계나 일생을 나열해놓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주인공마다의 정신세계와 삶에 대한 태도 등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돼 있다. 명작이 탄생하는 순간은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상상력이 뒤섞여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저자 조정육은 앞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등 여러 편의 동양미술 서적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 재주꾼이다. 저자는 옛 화공들을 그림 밖으로 불러내는 재주를 지닌 듯하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구상하는 대목. '정선은 붓을 놓고 눈을 들어 인왕산 흰 바위를 올려다봤습니다.언제 봐도 듬직하고 우람한 바위. '무겁다… 굴러 떨어진다… 웅장하다… 그렇지! 흰 바위를 검게 그리는 거야!' 그러면서 진경산수화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다.

안평대군이 안견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을 그려달라고 하자 안견은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그려서 몽유도원도를 완성한다. 그림에는 안평대군이 직접 쓴 그림제목과 그림을 그린 사연, 그리고 신숙주, 이개, 정인지, 김종서, 성삼문, 서거정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그림을 찬양하는 글이 이어져 있다. 저자는 단순한 그림 설명에 그치지 않고 안평대군과 사육신, 그를 배반한 신숙주 등과의 인연에 대해 더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다. '초충도'에는 여자가 남자들처럼 자신의 뜻을 크게 펼칠 수 없었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한탄하지 않고 역경을 자아개발의 기회로 삼았던 신사임당의 슬기로움이 담겨져 있다.

서양 화가들의 이름은 줄줄 외면서 우리 옛 화가라고는 교과서에서 배운 정선, 김홍도가 고작인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기를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1.안평대군은 꿈에 본 무릉도원이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추측하고 있을까.

2.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는 기존의 화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3.윤두서의 초상화는 꼿꼿한 정신세계를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그 이유를 책 속에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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