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벽돌사업을 하면서 한번도 곁눈을 팔지 않았어요. 지금도 다른 사업을 같이 하자거나 해보라고 권유하지만 앞으로도 한 우물을 팔 것입니다."
한 회장은 벽돌사업을 하기 전에는 약품유통업계에서 일했다. 이때도 적잖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1978년 벽돌과 인연을 맺고 (주)삼한상사를 설립했다.
한 회장은 이때부터 한눈팔지 않고 벽돌사업에 매달렸다. 사업 초창기에는 자재 유통에만 매달리다 1985년 경북 울진에 제1공장(현재는 철수)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벽돌 제조의 길에 들어섰다. 이어 1990년 경북 예천에 공장을 지으면서 현재의 주 생산공장으로 변모했다.
한 회장은 한때 매출액이 30억 원에 불과할 때 150억 원을 투자하려 하자 지인들이나 주변에서 걱정스러운 듯 "무모하다. 후회할 거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한 회장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국내에서 1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 제1의 품질, 기업이 되면 어떤 경쟁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앞선 투자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한 회장은 투자를 결심하고 세계의 우수공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공장의 강점만을 살려 예천의 공장을 만들고 최첨단 설비를 구축했다. 이 같은 인프라에다 휨과 뒤틀림 방지 등 하자가 없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하루에도 다섯 번 이상 실험실에서 흙 성분 실험을 거치는 등 기술연구에 힘써 오늘의 삼한C1을 만들었다.
"기술은 '정직'해요.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확실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투자와 연구로 100년 이상 가는 장수기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1945년 고령 출생인 한 회장은 1999년에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제1호 신지식인', 한국산업경영학회 경영자대상 등 수많은 수상기록을 갖고 있다.
이춘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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