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다시 하나로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복'은 아프리카 남부의 건조한 초원이나 반사막지역에서 사는 초식동물이다. 새 풀밭을 찾아 수천, 수만 마리씩 떼를 지어 옮겨다닌다. 처음에는 평화롭게 행렬을 이루며 풀을 뜯어먹지만 무리 앞쪽의 스프링복들이 풀을 다 뜯어먹어 버리면 먹을 것이 부족해진 뒤쪽 녀석들은 풀을 차지하기 위해 점차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앞쪽의 녀석들도 선두를 뺏기지 않으려고 달려간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무리 전체가 앞만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가게 된다. 근사한 새 풀밭이 나타나도 녀석들은 풀을 뜯어먹으려 멈추지 않는다. 무조건 달리기만 한다. 그러다 낭떠러지를 만나 앞의 녀석들이 떨어져 죽어도 그대로 달려가다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스프링복 무리에게서 현대인의 단면들을 보게 된다. 시간에 뒤쫓기는 일상, 앞만 보고 달리는 근시안적 삶, 무한 경쟁 사회로 내몰리면서 경쟁 자체가 목적이 되어가는 우리네의 모습!

말도 많고 탈도 많은 17대 대선도 마침내 끝나간다. 그동안 여야 후보들의 혈전 틈바구니에서 유권자들도 시달릴 대로 시달렸다. 거짓과 진실의 소용돌이, 난무하는 비방, 거친 설전 속에서 혼란스러워 했다. 아무리 선거판이 전쟁터 같다지만 어쩌면 이토록 어지러울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유머도, 상대방에 대한 격려도, 소탈한 웃음 한 조각도 찾아보기 힘든 멋대가리 없는 선거였다. 여기저기서'한방'이라며 터뜨릴 때마다 모두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뒤를 따라 떼지어 정신없이 달려가는 모습은 스프링복의 어리석은 질주를 떠올리게도 했다.

네거티브가 판쳤던 이번 대선은 그 어느 선거 때보다도 국민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다. 한동안은 마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처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선거는 일단 대단원의 막을 내릴 참이다. 결과에 따라 기뻐 춤출 사람도, 분루를 흘릴 사람도, 억울해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쪽·저쪽으로 갈라섰던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아우를 일이 모두의 큰 숙제다. 한동안은 네모꼴과 동그라미처럼 티격태격하겠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격려해줄 여유와 아량은 가져야 하겠다.

어느덧 丁亥年(정해년)도 저물어간다. 노루꼬리처럼 짧게 남은 이 한 해를 멋있게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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