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유권자의 값어치

미국 조지아주 케네소 주립대학의 커윈 스윈트 교수는 미국 역대 대선을 분석한 끝에 "국민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사랑한다"고 결론지었다.('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 유권자는 후보의 정책 등을 비교평가해 지지 후보를 결정하기 보다는 네거티브 공작에 쉽게 경도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권자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유권자 개인이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평가해서 지지후보를 결정해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선거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유권자는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평가하는 수고를 피하고 후보의 정체를 '단박에' 알 수 있는 네거티브에 쉽게 편승한다는 것이다.

16대 대선에서 괴력을 발휘한 이 법칙이 이번 대선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네거티브 공작이라면 전문가인 여권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그렇게 철저히 네거티브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유권자들은 꿈쩍도 않았다. 여권이 '한방'으로 기대했던 'BBK 동영상'이 공개됐는데도 이 후보의 지지도는 여전히 견고했다. 사실 여권의 이 후보 공격은 그의 도덕적 흠결이 사실로 드러났음을 감안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네거티브도 아니었다. 여권으로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탄식이 나올만 하다.

이러한 현상은 요즘 대선민심의 분석에 자주 활용되는 '인지부조화'이론과도 상반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과 어긋나는 정보나 사실을 접했을 때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후보의 견고한 지지세는 그의 도덕적 흠결이 드러났지만 이미 내린 지지 결정을 뒤집지 않겠다는 심리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윈트 교수는 지배적인 후보지지 결정요인이 네거티브의 유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이론이 맞다면 우리 유권자는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또다시 말려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참으로 헷갈리는 대선판이다.

그래서 혹자는 색다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깨끗하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도덕성을 따진다면 성직자를 뽑아야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러한 분석이 '오버'는 아닌 것 같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값어치만큼 지배됨을 보증하는 체제"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날 우리 국민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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