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 시평] 제대로 된 과학교육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6년 전 세계 15세(고1)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PISA)'의 과학적 응용능력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1위를 기록한 것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분야에서 2000년도 1위를 기록했던 우리나라는 2003년에는 4위로 내려오더니, 이번에는 10위권 밖으로 처짐으로써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상위 5%에 해당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과학성적은 2003년 세계 2위에서 이번에 17위로 곤두박질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 우리의 교육 여건을 볼 때,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 학생들이 커서 우리 사회의 중견이 되었을 때 예상되는 과학기술분야에서의 세계 경쟁력 약화를 생각하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의 주요한 원인으로 2002년부터 시행된 제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고교의 과학시간과 학습내용을 대폭 줄인 '쉬운 교육'과 과학과목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선택과목' 정책이 전반적인 과학실력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하향 평준화된 우리의 대학입시제도의 폐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우리 학생들의 대입 준비는 중1 때부터 시작하고, 모든 중고등학교 교육의 초점은 대학 입시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대입 수능을 위해서는 심화된 과학학습이나, 근본적인 과학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하고자 하는 탐구활동이나 실험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입시문제 풀이를 위한 단편적인 지식 교육이면 충분하다. 심지어 일부 대학에서는 신입생 유치 목적으로 과학과목의 반영 비율을 줄이거나 아예 반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바람직한 제대로의 과학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번 PISA평가에서 종전의 단순 지식 평가에서 과학 응용력 측정 비중을 높인 것이 우리의 성적을 추락시킨 주 원인이라는 점과,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추락이 더 심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하향 평준화된 입시 제도와 그에 맞춘 얄팍한 지식 위주의 과학교육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국가 경쟁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PISA 평가의 과학적 응용력 부문에서 2003년도 2위에서 이번에 6위로 떨어진 일본도 그 동안 자랑해온 기술입국의 기반이 흔들린다며 이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우리의 제7차 교육과정처럼 '쉬운 교육' 노선을 택하였지만, 이 정책이 학습의 경량화는 이룬 반면 원래 목적했던 사물의 이치를 캐내는 사고력을 기르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입시를 중고등 교육의 지상목표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실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제도는 그 피해가 더욱 더 심해지기 전에 빨리 고칠수록 좋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육의 평준화 정책이다. 특히 과학에서 진보와 혁신을 선도하는 것은 평균적인 다수가 아니고 소수의 탁월한 그룹이다. 우리의 평준화 교육 정책은 이러한 선도 그룹이 생성될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으며, 대학입시 정책 또한 이러한 평준화 교육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시행되고 있다. 각 대학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학생을 뽑는 것보다는 정부의 획일적인 틀 안에서 자기가 뽑는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도 모르면서 학생 선발을 하고, 그 결과로 전혀 대학 교육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이 입학하여, 대학교육의 질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자명하다. 정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있어 완전한 자율권을 주어 각 대학이 각자의 방법대로 자기 대학의 교육 목적과 환경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준화 정책은 다양성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의 시대 정신에도 맞지 않고, 개인적인 수학 능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은 하향 평준화로 갈 수밖에 없다.

사물의 이치를 캐내며 사고력을 기르는 제대로 된 과학교육, 개인 능력에 따라 특화된 과학교육이 이루어 지도록 대학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이 변화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특화되고 탐구와 실험이 강조되는 과학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열악한 중고등학교 과학교육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국가의 장래가 걸려있는 과학교육에 대한 투자보다 더 시급한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재성 포스텍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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