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을 위한 도시 디자인] ④시청

"시민들이 원했다" 2차대전 폭격 건물 원형대로 복원

시민 세금으로 시청사를 새로 짓는다고 욕할 일만은 아니다. 역사와 전통을 남기고, 도시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혈세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시를 빛내고 시민들을 위한다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국내 자치단체들이 과연 그런 건물을 짓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도시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을 위한 호화 청사는 아닌지 묻고 싶다. 이 같은 호화 청사 논란 속에 지금 대구에서도 시청사 이전 문제가 나오고 있다. 새로 짓는 대구 시청사는 시민들을 위한 시청이 될 수 있을까.

◆역사와 전통을 빛내는 시청

청동으로 빚은 궁수 상과 체스판 무늬의 분수대 바닥을 끼고 유럽 중세 시대에 온 듯한 장엄한 성(城)이 등장한다. 둥근 지붕에 뾰족한 첨탑이 우뚝 솟은 고딕 양식. 성을 둘러싸고 있는 대구 수성못만한 호수엔 수백 년은 된 듯한 수양버들과 소나무가 드리워 있다. 호수를 따라 성 전체를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산책길을 걷는다. 정겨운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가로이 노니는 백조 떼와 그림 같은 성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이런 풍경이 시내 한복판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다. 시내 중심 도로와 쇼핑가 사이에 있는 독일 하노버 시청은 실제로 그렇다. 하노버 시청의 원형은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1년부터 12년간 늪지대에 성을 세우는 '불가능한 공사'였지만 모두 6천26개나 되는 너도밤나무 기둥을 박아 준공에 성공한다. 지금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을 시민들이 원해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하노버 시청은 안과 밖 모두 세계 모든 관광객에게 늘 열려 있다. 시청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38m나 되는 높은 중앙홀에 전시한 1689년, 1939년, 1945년 등 전쟁 전후의 하노버 모형을 둘러보는 여러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다. 중앙홀과 둥근 지붕을 연결한 비스듬한 나무 승강기는 하노버 시청의 또 다른 명물. 이곳에 올라 바라보는 하노버 시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추억을 남긴다.

◆환경과 도시를 생각하는 시청

런던 템스강 타워브리지. '모어 런던'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이상한' 건물이 하나 보인다. 달걀 같기도 하고 헬멧 같기도 한데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잘 모르겠다. 런던 시민조차 헷갈려하는 이 건물의 정체는 바로 '시청'이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다스베이더 헬멧(DarthVader's Helmet)' 또는 '알(egg)' 등으로 불리는 런던 시청의 독특한 디자인은 친환경 건축의 산물. 같은 높이의 사각형 건물보다 표면적은 25% 정도 줄어든 반면 태양열과 빛은 훨씬 더 잘 흡수한다. 대구를 비롯한 국내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통유리와 달리 자연 환기가 가능한 창으로 디자인됐기 때문에 여름에도 자연 냉방이 가능하다.

런던 시청은 단순환 친환경 건축물이 아니라 '모어 런던 프로젝트'라 불리는 복합 문화공간의 중심이다. 2002년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이 총지휘를 맡고, 영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디자인한 '모어 런던 프로젝트'는 시청사를 비롯한 7개 사무용 빌딩을 새로 짓고, 이 같은 하드웨어 속에 극장, 카페, 레스토랑 같은 소비형 소프트웨어들을 결합시킨 것이다. 시청사 안에서 패션쇼가 열리기도 하고, 야외 전시·공연장마다 사시사철 문화·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런던(영국)·하노버(독일)에서 글·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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