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국근의 風따라 水따라]어사 박문수 묘

어사님

당신께 가는 길 굽이굽이 참으로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그 길은 끝이 없었지요. 가도 가도 다함이 없는 모퉁이, 그냥 돌아설까하는 마음이 든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따금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만이 살을 에는 골짜기 바람을 타고 들려오곤 했습니다.'은석사??였던가요. 묘아래 절집 말입니다. 그 추운 날 마신 한 바가지의 물이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풍수에선 이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혈(穴)을 천혈(天穴)이라 합니다. 산 정상이나 적어도 7부능선 이상에 맺힌 혈을 일컫습니다. 천혈은 주산이나 주위 산세가 높습니다. 당연히 혈도 높은 곳에 위치하겠지요. 이런 지형서 낮은 곳에 묘를 쓰면 전후좌우로 압박을 받습니다. 후손들의 우환이 두려운 곳입니다. 풍수이론을 떠나서라도 이런 지형에선 당연히 높은 곳에 묘를 쓰겠지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뭇 산들이 머리를 조아립니다. 따라서 천혈에선 귀(貴)가 발현된다고 봅니다. 이게 벼슬을 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던 이유이지요.

이로 반대로 산 아래, 즉 기슭에 맺힌 혈을 지혈(地穴)이라 합니다. 주산이나 주위 산들이 낮은 지형이지요. 이런 곳에선 부자가 난다고 봅니다. 그 중간, 즉 산중턱에 있는 묘들은 부와 귀, 양쪽 모두를 노린 것이겠지요. 이를 인혈(人穴)이라 합니다.

어사님

당신께서 쉬고 계신 곳을 물형론(物形論)으로 따져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라 합니다. 장군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는 의미지요. 그래서 그런지 어사님이 문관(文官)출신이지만 묘 앞엔 문인석(文人石)은 보이지 않고 무인석(武人石)만 있습니다. 그것도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고 말입니다. 전혀 위엄이라곤 찾아 볼 수 없지요. 정겨운 표정입니다. 어쩌면 백성을 사랑하신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런 형국은 평화와 안정을 상징합니다. 장군이 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이런 얘기도 전해져 옵니다. 어사님이 생전에 자리 잡은 이곳은 장군만 덩그렇게 앉아있고, 주위에 병졸을 뜻하는 산의 모양이 없었다지요. 없으면 만들어야겠지요. 비보(裨補)의 도입입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산 아래 병천시장입니다. 즉 시장에 나다니는 사람들이 병졸이 된 것이지요. 더하여 이런 형국에선 북이나 창, 칼로 비유되는 바위나 뾰쪽한 봉우리들이 구비되어야 하는데 얼른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대목이지요.

어사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 어떠한지요. 그 옛날 당신께서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던 당시와 비교해서 말입니다.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그들에게 시달리던 힘없던 백성들…. 제가 보기엔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별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문에 보도되는 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말이지요. 아니 가진 자들의 힘의 논리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났습니다. 좋든 싫든 앞으로 5년간은 그 분이 이끌어 갑니다. 이번만은 잘난 이들만의 세상이 아니길 빌어봅니다.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지요. 어사님처럼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그런 지도자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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