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루틴을 만들어라

당신의 프리샷 루틴(Pre-Shot Routine)은? 이 물음에 자신있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주말골퍼다. 샷을 하기 전에 늘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준비동작을 말하는 프리샷 루틴은 일관된 리듬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미현 선수를 보자. 먼저 티를 꽂고, 볼을 얹은 다음 뒤로 물러나 라인을 점검한다. 그 다음 볼과 목표를 확인하고 볼 옆으로 다가가 빈 스윙을 한 차례 한다. 볼 뒤에 클럽헤드를 갖다 대고 그립을 잡는다. 스탠스를 취하고는 곧바로 주저없이 샷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의식과 같다. 순서는 물론이고 리듬도 매번 같을 만큼 습관화되어 있다.

세계적인 톱 골퍼일수록 이 프리샷 루틴은 빠트리지 않는다. 이들이 클럽을 선택하고 샷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18홀을 도는 내내 1, 2초의 편차도 없을 정도로 항상 일정하다.

타이거 우즈가 루틴을 따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8초다. 우즈는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도 '프리샷 루틴'은 다 지킨다. 준비동작 중 소음이 들리거나 뭔가 꺼림칙하면 지체없이 자세를 푼다. 그러곤 루틴을 처음부터 다시 따른다.

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다. 타석에 서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저마다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삼성라이온즈의 박한이 선수를 보자. 그는 늘 배트를 옆구리에 끼고 장갑을 조이며 타석에 들어선다. 왼발로 땅을 판 다음 헬멧을 벗어 땀냄새를 맡고는 다시 쓴다. 배트로 홈플레이트 앞쪽에 선을 긋고는 배트를 세우고 엉덩이를 한두 번 턴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타격자세를 잡는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은 박한이 선수가 이렇게 자세를 잡는데는 언제나 6, 7초가 걸린다고 했다.

이쯤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24일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5년 재임의 첫단추를 꿰게 된다. 인수위 구성으로 18홀 중의 첫 홀, 첫 티샷의 자리에 서게 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과감하게 루틴을 버리라고 당부하고 싶다.

세계적인 골프선수들의 프리샷 루틴은 실수를 줄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불행하게도 골프의 프리샷 루틴처럼 정형화되지 못했다. 이미 국민들은 여러 차례의 지나간 루틴에서 실망을 해왔다. 인수위에 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아서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처음으로 생긴 것은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나서다. 명칭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하지만 당시엔 준비위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전 대통령의 위세에 눌려서다. 김영삼 정부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이후 늘 정부와 인수위 간의 불협화음이 문제로 드러났다. 1998년엔 인수인계를 두고 국가안전기획부 등에서 문서를 파기하는 소동을 겪기도 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문서파기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때론 인수위에 소속된 인사들이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이전 정권을 무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이런 과거의 루틴을 빨리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앞선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말라는 말을 에둘러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히려 인수위 구성에서부터 제18대, 제19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정치의 프리샷 루틴'을 새로 만들라고 당부하고 싶다. 행여 논공행상이나, 내 사람 위주로 인수위를 구성하는 우를 또 범하지 않기를 바라서다.

어쨌든 국민들은 선택을 끝내고 앞으로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들이 도덕성보다 능력을 택했다느니, 무능보다 부패를 택했다느니 말들도 많다. 하지만 진정 새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새 정부를 '좋아서 선택'한 것보다 '상대가 싫어서 선택'한 국민들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패자는 물론이거니와 승자도 이런 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첫 홀 첫 티샷을 하는 두려움으로 장래에 구성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프리샷 루틴으로 삼을 만한 그런 모범을 이번에 만들었으면 한다. '싱글 정치'로 가는 습관을 이번에 확고하게 굳혔으면 한다.

국민들은 이때까지 최선이라고 선택하곤 5년 뒤 후회하고, 그나마 차선이라고 선택하곤 5년 뒤 실망해왔다. 이번엔 달랐으면 한다. 5년 뒤, 좋은 루틴을 만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활짝 웃으며 청와대를 나서길 기대한다.

박운석 스포츠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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