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속의 테너 이야기(2)― 마리오 필리페스키(Mario Filippeschi 1907~1979) ―
마리오 필리페스키를 기억하는 오페라 애호가들은 많지 않다. 뛰어난 리리코―스핀토 테너였음에도 불구하고 50년대를 넘기며 다른 테너들과 함께 잊히고 말았다. 그의 중음역은 따스하고 고음역은 빛나고 화려했다. 죠셉 프라갈라는 칼럼을 통해 필리페스키는 테너 강국 스페인의 전설적인 테너 가야레(1884), 라자로(1887), 플레타(1897) 등을 압도한다고 격찬한 바 있다. 필리페스키는 1937년 30세 늦깎이로 데뷔했다. 그는 이태리 피사 부근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4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전혀 음악적 분위기가 아니었고 축제 때나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17세부터 2년간 클라리넷을 배웠으나 20세에 입대하여 3년간 군복무할 때 그의 재능을 상관이 알아준 것이 계기가 되어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제대후 오페라 오디션에서 비치도미니 선생을 만나 5년간 체력단련과 음악훈련을 받게 된다. 두 번째 선생 페시니에게 오페라 악보 보는 법을 배운 뒤 1937년 7월 19일 파르마 부근 콜로르노에서 도니젯티의 오페라 의 에드가르도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데뷔한다. 이어 의 만토바, 의 핑커톤, 의 로돌포, 의 알프레도 역을 맡았고 1952년 플로렌스 5월 축제 때 칼라스와 함께 로씨니의 오페라 를 공연하는 행운도 잡았다. 그의 음성은 은빛으로 빛났고 그의 고음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는 리리코―스핀토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무리한 역을 맡지 않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잘 관리했다.
1940년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스페인 순회공연을 했고, 대선배인 라우리 볼피(1892-1979)의 초청을 받아 그의 가정에 머물며 함께 지내기도 했다. 라우리 볼피의 레퍼토리를 따라 잘 소화했으며, 특히 의 칼라프 역을 잘했다. 라우리 볼피는 그를 극찬했고 언론은 필리페스키를 그의 계승자로 지목했다. 1942년에는 로마 오페라 가극장에서 일본 천황 히로 히토가 관람한 공연에서 의 핑커톤 역을 불렀다.
1945~46년 시즌은 그에게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의 중음역은 차차 무거워져 의 투리두, 의 라다메스 역을 맡는 등 성대가 드라마틱 내지 로부스토―스핀토로 변모했다. 나이듦에 의한 자연변화 현상이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1946~50년 스페인, 포르트갈 등지에서 당대 최고의 테너로 인정받았고 멕시코에서 또 한차례 칼라스와 를 공연했다.
그는 좋은 체격과 미남형의 외모로 오페라 무대에 잘 어울렸다. 그는 1961년 50대 중반 아직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은퇴하여 골동품 가게, 무대감독직 등을 맡았다. 그는 수많은 레코딩을 남겼으나 국내에는 그 자료가 희귀하다. 그는 1979년 크리스마스에 플로렌스에서 72세로 서거했다. 지금도 이태리 오페라 애호가들은 필리페스키를 이야기한다.
윤성도(시인, 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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