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하루 어땠어요? 조금 많이 바쁘세요? 처음에는 제가 많이 고생했어요. 나라도 다르고 생활이 달라서….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었어요. 여보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담배, 술을 너무 많이 해서 너무너무 걱정이에요. 일찍 집에 오면 많이많이 행복해요."
구미 가톨릭문화회관(소장 허창수 신부)에서 한글을 배우는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제니(27) 씨가 20일 열린 한국어학교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읽은 '남편에게 보내는 글'이다. 제니 씨는 이 편지를 읽으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감정표현을 한글로 할 수 있게 된 덕분. 최근 그의 남편이 직장을 잃어 생활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북받쳤다.
1년 6개월 동안 제니 씨와 동고동락하면서 열심히 한글을 가르쳐 온 우이숙 선생님도 눈시울이 불거졌다. '한국살이'에 적응하기 위해 눈물겹도록 노력해온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축하객들도 낯선 땅에 시집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졸업식 사회는 한국어 선생님과 초급반을 졸업하는 토아(23·베트남) 씨가 맡았다. 한국살이 2년째인 토아 씨는 말도 제법 하고 편지도 제대로 쓴다. "우리 아들은 낙현이고 한 살입니다. 나중에 한국 군대 안가면 좋겠어요."라고 솔직한 바람을 표시할 줄도 안다.
한국어학교에 등록한 이주여성들은 238명. 이 중 첫걸음반 7명, 초급반 12명, 중급반 1명 등 22명이 이날 수료와 승급을 했다. 나머지는 1년 더 학습해서 소정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승급할 수 있다.
출신국가도 중국, 대만, 베트남, 러시아, 일본, 미국, 영국, 스위스 등 12개국이나 된다. 중국인이 83명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 66명, 일본 28명, 필리핀 14명, 러시아·미국 각 9명, 캄보디아 3명 순이다. 일본인이 비교적 많은 이유는 일본 유리제조업체인 '아사히글라스'의 구미공단 유치가 이루어지면서 파견 온 근로자 가족들의 구미 체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졸업식장 주변에는 이들의 행복한 가정생활을 담은 가족사진 전시회도 함께 열려 눈길을 끌었다.
구미가톨릭근로자센터 모경순 사무국장은 "한국어를 배운 지 1년 만에 서툴지만 말과 글쓰기에 적응하고 실력이 부쩍부쩍 늘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구미·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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