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2년째 代이은 가계부 사랑 정경희·현선경 母女

"단순한 금전출납부 넘어 우리집 내력이 빼곡해요"

'우리 아기 축하해, 남부럽지 않게 키워야지. 청도 동산의원에서 분만(1986년)',

'아기 배꼽 떨어진 날(1991년)'.

'콩나물 300원, 교통비 210원(1986년)'.

'상추, 쑥갓 옆집에서 가져다 줌(2003년)'.

정경희(48·경북 청도군 이서면) 씨는 결혼하던 해인 1986년부터 매일 오후 7시만 되면 가계부를 펼친다. 구입한 물건과 영수증을 모두 꺼내놓고 가격을 대조해본 후 가계부에 가격을 써내려간다. 그날 옆집에서 푸성귀를 갖다주면 그것도 메모해둔다. 축의금, 부조에 대한 기록은 물론, 그날 남편이 사온 과일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그렇게 모인 가계부가 22권. 가정의 역사나 다름없다.

"친구들은 가계부 쓰는 것을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하루에 10분이면 충분한걸요. 한번 습관 들이면 오히려 안 쓰고는 못 배겨요."

덕분에 가계부를 보지 않아도 적금, 세금 등을 포함한 지출과 수입 현황이 머릿속에 정리된다. 불가피하게 가계부를 쓰지 못할 형편이면 메모지에라도 기록해둔다. 이렇게 기록한 메모지는 가계부 곳곳에 붙어있다. 가끔은 그날의 일기도 쓰여있다. 아이들의 낙서, 어버이날 받은 편지 등이 가계부에 끼워져 있어, 정 씨네 가족일기를 보는 듯하다. 가계부에 그날 본 영화 티켓까지 붙어있는 날은 정감 어린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정 씨가 20년 넘도록 가계부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물건을 언제 어디서 샀는지, 친지들의 집안 행사가 언제였는지, 당시 축의금은 얼마나 했었는지 당장 찾을 수 있어요. 기억하는 데엔 한계가 있으니, 가계부는 저의 기억창고나 다름없죠."

어머니의 생활습관을 본받아 이제는 대학생 딸 현선경(22) 씨도 다이어리에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중국 어학연수 때 중국과 우리나라의 물가 차이가 신기해서 적기 시작했는데, 이젠 습관이 돼서 잊지않고 꼼꼼하게 적어두죠. 친구들이 물어올 때면 금방 찾아 대답해줘요." 딸 현 씨도 어머니 못지 않게 가계부 마니아가 됐다.

사실 정 씨의 가계부 습관은 대를 이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친정 어머니가 꼼꼼하게 가계부 정리하는 것을 지켜본 정 씨에겐 가계부 쓰는 일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습관을 딸 현 씨가 잇고 있으니, 삼대째 가계부 사랑을 잇고 있는 것.

어머니의 가계부 쓰는 모습은 아이들의 경제 교육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용돈기입장을 쓰는 습관을 들여, 학교에서 상도 받았다. 각자 통장을 만들어 돈을 관리하게 했기에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경제관념이 투철한 편이다.

정 씨의 가계부 쓰기에는 원칙이 있다. 먼저 영수증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일반 영수증은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가 1년이 지나면 소각한다. 중요한 서류, 세금고지서는 5년간 보관한다.

또 송금한 것은 붉은 색연필로 따로 표시하고 총결산은 한 달이 끝난 후 따로 작성한다.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무엇보다 물건을 구입하기 전 메모해뒀다가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은 기본이다.

"가계부는 우리 가정의 돈을 지키는 파수꾼이나 다름없어요. 2008년에는 가계부 한 권씩 장만해 보는 게 어떨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